이런 리메이크도… 30년전 만화가 웹소설로, 다시 웹툰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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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나 순정무협 ‘취접냉월’
진산, 소설책 5권 분량 재탄생
“제안 받고 처음엔 엄두안나 거절”
황 “작품 생명력 이어져 기뻐”

장르를 넘나드는 리메이크 중 이처럼 신선한 시도가 있었을까. ‘아 뉴스데이’ ‘굿바이 미스터 블랙’ ‘레드문’ 등을 그린 ‘순정만화의 대모’ 황미나 작가(59)의 1991년 작품이 무협 소설계에서 가장 두꺼운 팬층을 보유한 진산 작가(51)의 손에서 재탄생했다. 22일 카카오페이지에 공개된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 ‘취접냉월’이다.

웹툰·웹소설이 영화나 드라마로 리메이크된 경우는 많았지만 2권의 만화책으로 나온 작품을 소설책 5권, 웹소설 125화 분량으로 다시 쓰는 작업은 업력 30년에 가까운 진 작가에게도 도전이었다. 취접냉월의 웹소설화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떻게?’가 먼저 떠올랐다는 진 작가, 그리고 황 작가를 14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취접냉월은 발표 때부터 순정만화에 무협을 접목한 파격이었다. 유년시절 언니와 오빠가 읽던 무협소설을 접하면서 “무협이 몸의 기본기로 자리 잡았다”는 황 작가는 검은 생머리를 두건으로 가리고 ‘살수무정’(살수는 정을 가져선 안 된다)의 자세로 검을 휘두르는 주인공 ‘냉소월’을 만들었다. 어렸을 적 부모가 죽는 장면을 목격한 소월은 원수를 갚고자 무술을 연마해 강호 최고의 여살수로 거듭나지만 우여곡절 끝에 마주한 원수가 자신이 사랑에 빠졌던 남자 ‘백운비’임을 알게 된 뒤 죽음을 택한다.

진 작가는 처음 리메이크를 제안받았을 땐 엄두가 나지 않아 거절했지만 “황미나의 무협 순정을 다시 세상에 선보일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았기에” 고민 끝에 1년에 걸쳐 리메이크를 진행했다. 웹소설은 원작에 비해 세계관은 확장됐고 등장인물도 다양해졌다.

“원작이 주인공에 집중했다면 웹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인간상을 조망했어요. 원작에 없던 캐릭터가 생겼고, 극 초반까지만 등장했던 캐릭터가 끝까지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죠. 과거 무협에선 영웅이 홀로 싸우고 고독하게 죽었다면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어벤져스’에도 다양한 히어로가 등장하듯 취접냉월에서도 여러 조연의 이야기를 강화했습니다.”(진 작가)

목표 달성을 위해 무술을 연마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냉소월은 대표적 여성 히어로인 원더우먼이나 캡틴마블을 뛰어넘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냉소월의 주체성과 강인함은 황 작가가 만화를 그릴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면서 진 작가가 리메이크에서 반드시 지킬 원작의 기준으로 삼았던 점이다.

“냉소월은 잘 단련된 특수부대의 여성 킬러와 같은 인물이에요. ‘이렇게 독한 여성 캐릭터가 있었나’ 싶을 정도죠. 원수를 갚겠다는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고, 나약해지면 사정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여요. 최근 여자 주인공에게 요구되는 덕목이기도 하죠. 원작 속 냉소월의 특징을 최대한 강조하려 했습니다.”(진 작가)

웹소설 취접냉월은 웹툰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카카오페이지가 만화를 웹소설로, 웹소설을 웹툰으로 두 단계에 거쳐 리메이크하는 첫 사례다.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 깊어진 세계관과 풍부해진 캐릭터들로 독자와 만나는 것이다.

“묻히기 아까운 옛날 만화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림체나 대사가 옛날 스타일이라 구닥다리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훌륭하죠. 과거 만화들이 웹소설과 웹툰으로, 영화와 드라마로 리메이크돼 많은 이들을 만나는 게 원작자가 가장 바라는 것 아닐까요. 작품의 생명력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니까요.”(황 작가)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리메이크#웹툰#웹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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