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임대, 대통령은 딸·아들에게 권할 수 있나[오늘과 내일/허진석]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내 집 갖고 싶은 욕망은 잘못 아냐
외려 ‘민간’ 활용해 이뤄줘야 할 정부 목표

허진석 산업2부장
허진석 산업2부장
좋은 직업 구별법이라고 알려진 얘기가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권유해 대를 이어 하는 직업이 그런 직업이라는 것이다. ‘사’자가 붙은 의사, 판검사, 변호사 등에 그런 경우가 많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세속의 사람들은 더 나은 것을 알고 싶고, 갖고 싶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게다. 이 구별법이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면 직업 권유의 대상이 친구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고 바로 자식이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은 이런 것이다.

아파트 가격과 전월세 가격이 너무 급하게 오르면서 나라가 혼란스럽다. 집값이 급격히 오르면 무주택자는 불안해지고, 1주택자도 마냥 안심할 수가 없다. 자식들이 곧 살 곳을 찾아야 하는 생애를 맞게 되는데, 일자리가 줄고 있어 결혼할 때 전셋집이나 제대로 구할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팔기도 사기도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다주택자들이 매도보다는 자식에게 증여를 택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변창흠 국토부 장관 후보자와 동탄의 공공임대주택 단지를 방문해 어린이 2명을 둔 부부가 44m²의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을 두고 논란이 됐다. 청와대가 지질한 변명까지 내놨지만 그건 본질이 아니다. 대통령은 이날 “자기가 자기 집을 꼭 소유하지 않더라도 이런 임대주택으로도 충분히 좋은 주택으로 발전해 갈 수 있는, 그 어떤 주거 사다리랄까 그런 것을 잘 만들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임대주택 많이 만들어 집을 소유하지 않고도 충분한 주거를 누리도록 하자는 얘기로 받아들여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난리다. 변 후보자가 정식 장관이 되기도 전에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변 후보자의 부동산 공급 방안을 잘 지원해 달라고 지시한 뒤의 일이라 시장의 반응은 더 민감해진 듯하다. 사회 불평등 해소를 위해 부동산의 시세 차익은 반드시 환수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장관 후보자인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임대주택이 나쁘다는 얘기도, 짓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다. 좋은 임대주택은 많이 지어야 한다. 국가는 국민에게 좋은 주거환경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대주택 정책은 복지정책이지 주택시장 안정대책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임대주택을 지어야 전월세 안정에 효과가 난다는 것인가. 공공임대를 많이 지으면 지을수록 그 비용과 임대료 수입의 차이를 세금으로 메워야 할 텐데, 그럴 예산은 있다는 건가. 공공임대주택으로 전세난을 해결하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다.

대통령의 발언이 ‘임대주택에서 오래 편하게 살다가 자기 집을 사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해도 ‘현실을 모르는 얘기’밖에 안 된다. 지금까지 집을 가진 많은 1주택자들은 작은 집이라도 수도권 외곽에 사서, 집값이 조금 오른 것과 자기 저축과 대출금을 합해 집을 조금씩 늘려 왔다. 국토부가 전국 6만 가구를 조사해 발표한 ‘2019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4.1%는 ‘주택이 꼭 필요하다’고 답했고, 이들은 주택을 소유하려는 이유로 주거 안정(89.7%·복수 응답), 자산 증식(7.1%), 노후생활 자금(3.3%) 등의 이유를 꼽았다. 내 집을 갖고 싶은 욕망은 죄가 아니다. 외려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줘야 하는 국민들의 꿈이다. 이미 형성돼 있는 민간 부동산시장을 애써서 붕괴하지 말고 잘 활용해서 말이다.

대통령과 국토부 장관은 딸과 아들에게 임대주택에서 영원히 살거나 오래 살다가 집을 마련하라고 권할 수 있나. 그걸 자식에게 권할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정책일 게다.

허진석 산업2부장 jameshuh@donga.com
#공공임대#대통령#욕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