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달빛 반짝이는 윤슬[손진호의 지금 우리말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3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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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채널A
사진=채널A
“밥이 대수냐. 고기를 잡아야지.”

구수한 입담에 웃음보가 또 터진다. 왁자지껄,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다. 그러면서도 하나같이 낚싯대의 미세한 떨림조차 놓치지 않는다. 예능 대세로 자리 잡은 채널A ‘도시어부2’의 현장이다.

이 낚시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아스라한 어릴 적 추억과 만난다. 한여름이면 냇가에서 살다시피 했다. 손으로 돌 밑을 만져 물고기를 잡는가 하면, 미늘을 단 낚싯줄을 냇가에 주렁주렁 걸기도 했다. 동네 형들이 좽이(투망)질할 때면 덩달아 신이 났다. 더운 여름날 마당에 쫙 끼얹는 나비물처럼 원뿔 모양의 좽이가 물 위에 활짝 펼쳐지는 그 순간을 떠올려 보라.

‘돌땅’도 잊을 수 없다. 돌로 고기가 숨어 있을 만한 물속의 돌을 내리쳐 그 충격으로 고기를 잡는 것이다. 요즘은 돌땅을 아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 낱말 또한 사전 속에서 박제화돼 가고 있다.

낚시 세계에서 만나는 예쁜 낱말이 있다. ‘윤슬’이다. 꽃잎과 풀잎에 살포시 맺히는 이슬만큼이나 말맛이 곱다.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말한다. 이와 닮은 말로 ‘물비늘’이 있는데, 잔잔한 물결이 햇살 따위에 비치는 모양을 이른다.

낚시의 맛은 누가 뭐래도 ‘손맛’이다. 고기가 입질을 하거나 물고 당기는 힘이 손에 전하여 오는 그 느낌이다. ‘물거리’나 ‘손때’는 물고기가 가장 잘 낚이는 때를, 주대는 낚싯줄과 낚싯대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낚시질해 잡은 물고기를 산 채로 넣어 두는 그물 모양의 망을 ‘살림망’이라고 한다. 이때의 ‘살림’은 ‘살리다’란 동사의 명사형이다. ‘살림살이’에서의 ‘살림’과는 전혀 다르다.

사진=채널A
사진=채널A
‘주낙’은 한 줄에 다시 여러 줄의 낚싯줄을 달아 고기를 잡는 걸 말한다. 한자어 연승(延繩)을 밀어내고 입말로 자리 잡았다. 덕분에 ‘주낙배’ ‘주낙질’도 입에 오르내린다.

걸음낚시는 계곡을 따라 걸으면서 하는 낚시질이고, 던질낚시는 릴을 이용해 멀리 던져 하는 낚시질이다. 낚싯대를 드리워놓고 가만히 앉아서 하는 낚시질은 담금질이라고 한다. 곧은 바늘로 세월을 낚으며 때를 기다린 강태공의 낚시가 담금질이 아니었을까. 멍텅구리 낚시도 있다. 여러 개의 낚시를 떡밥 둘레에 드리워서 떡밥을 보고 달려드는 멍텅구리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낚시질이다.

멍텅구리는 원래 ‘뚝지’라는 이름의 물고기다. 이 녀석은 배에 빨판이 있어 바위 따위에 붙으면 쉬 떨어지지 않는다. 못생긴 데다 동작이 느려 위험이 닥쳐도 재빨리 피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

다람쥐도 뜻밖에 낚시 도구와 관련 있다. 다람쥐를 잡기 위해 낚싯대 끝에 맨 올무인 ‘낚시코’가 그것이다. 다람쥐 뒤에서 낚시코를 드리우면 무엇이나 목에 거는 습성이 있는 다람쥐가 덥석 제 목에 건단다. 영민한 생김새와는 영 딴판이다.

요즘처럼 삶이 팍팍하거나 힘들 때면, 살맛 나게 하는 ‘그 무엇’이 기다리는 곳으로 훌쩍 떠나보자. 윤슬과 물비늘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싶고.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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