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이후 4년, 여전한 후폭풍[오늘과 내일/신연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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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없어 수출 못 하는 기막힌 상황
박근혜 정부의 한진해운 파산 여파

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코로나 경제난 속에서도 수출이 다시 늘고 있다. 한국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1위로 예상되는 등 나름대로 선방했다. 그런데 해외 주문은 밀려드는데 현장에선 배가 없어 수출을 못 한다는 아우성이 빗발치고 있다. 컨테이너선 운임이 작년보다 3∼4배 뛴 데다, 웃돈을 주고도 배를 구할 수 없어 수출 기업들이 발을 동동 구른다. 1차적인 원인은 코로나19로 글로벌 선사들이 배 운항을 줄였기 때문이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2017년 2월 한진해운 파산 때문이다.

한진해운 파산은 당시에도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다. 해운업계 불황이 깊어지고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적자가 쌓여가긴 했다. 그래도 한진해운은 국내 1위, 세계 7위의 해운업체였고 현대상선은 세계 14위였다. 경영 상태도 한진해운이 나은 편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현대상선만 살렸다. 한진해운은 자구책이 미흡하다며 지원을 끊고 법정관리로 밀어 넣었다. 한진해운은 파산했고 40년간 쌓은 글로벌 네트워크는 공중분해됐다.

2016년 4월 한진해운이 죽느냐 사느냐 산업은행과 협상하던 절체절명의 시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엉뚱하게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있는 스위스로 날아갔다. 평창올림픽조직위원장으로서 올림픽 마스코트를 호랑이에서 진돗개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진돗개는 박근혜 대통령의 반려동물이었다. 조 회장은 마스코트 교체에 실패했고 5월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쫓겨났다. 8월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시중에는 조 회장이 최순실에게 밉보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한진이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적게 냈고, 최순실과 연관된 회사의 올림픽 공사 계약을 거절했다는 이유에서다. 아무 대책 없이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화물을 실은 배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바다에 멈춰 서는 물류대란이 일어났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오히려 “대주주의 방만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서 해운업은 국가 기간산업이다. 다른 나라들도 해운업을 시장에만 맡기지 않고 정부가 지원 육성한다. 한진해운이 파산한 것은 대주주 책임도 크지만, 무능하고 무책임한 박근혜 정부의 책임도 컸다. 그 후폭풍을 지금 수출 기업과 한국 경제가 고스란히 맞고 있는 것이다.

요즘 정부가 대한항공과 재벌에 대한 특혜 논란까지 빚으며 아시아나와 항공산업을 살리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을 보고 경제계에서는 한진해운 사태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대주주의 책임은 엄격히 묻되 나라의 미래를 내다보고 산업을 살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이없는 것은 한진해운 파산만이 아니었다. 개성공단 폐쇄 과정도 미스터리다. 국무회의 한번 거치지 않았고, 공식 발표 이틀 전 박 대통령이 구두로 지시했다는 사실만 알려졌다. 5일 전 “마음 놓고 사업하시라”는 통일부 장관의 말을 믿었던 개성공단 기업 125곳은 정부의 갑작스러운 폐쇄로 아무것도 못 건지고 몸만 빠져나왔다. 북한의 핵개발은 못 막으면서 우리 기업들의 발등만 찍은 것이다. “미친 정부”라며 반발했던 기업들은 정부가 위법 행위를 했다며 아직도 소송 중이다.

박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된 지 꼭 4년이 흘렀다. 이명박 대통령도 자기 회사 소송비용 수십억 원을 대기업에 떠넘겨 법의 심판을 받았다. 두 사람을 배출한 국민의힘은 대국민 사과를 하겠다지만 그것으로 끝일 수 없다. 200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BBK를 비롯해 두 정부의 여러 사건과 석연찮은 결정들은 법적 단죄는커녕 진상조차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 이들이 한국의 정치 사회에 끼친 해악과 경제에 미친 심각한 피해도 여전히 진행 중임을 잊어서는 안 될것이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한진해운 파산#컨테이너선 운임#수출#국정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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