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지-원종현의 ‘옥탑방 결의’[오늘과 내일/김종석]

김종석 스포츠부장 입력 2020-12-05 03:00수정 2020-12-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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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다짐 부여잡고 우승까지
포기 않고 준비하면 기회는 온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우승을 확정 지은 둘은 서로를 향해 달려가 격하게 껴안았다. 18m 남짓 거리를 두고 호흡을 맞추던 NC 투수 원종현과 포수 양의지다.

NC가 창단 9년 만에 처음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는 영광의 순간을 함께한 둘은 33세 동갑내기. 20대 초반만 해도 이런 환희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군산상고에 다니던 2005년 황금사자기 홈런왕 출신 원종현은 고졸 후 LG에 입단했다. 광주 진흥고를 나온 양의지는 두산에 막차로 지명됐다. 19세에 청운의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나 서울의 인기 구단에 몸담아 가슴이 설렜다. 양의지는 서울 구로동 사촌 집에서 잠실까지 전철을 타고 다니며 손바닥에 피가 날 정도로 운동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원종현은 2006년 프로 데뷔 후 2시즌 동안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고, 양의지는 2시즌에 3경기 1타수 무안타의 초라한 성적을 남긴 뒤 입대해 경찰청 야구단에서 동기로 뛰었다. 많이 혼나면서 야구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제대 후 둘은 경기 구리시에 거처를 마련했다. 2010년 연봉은 최저 수준인 2400만 원. 원종현은 원룸, 양의지는 옥탑방에 전세를 얻어 지내며 서로 의지했다. “앞이 잘 안 보였다. 종현이가 자주 놀러왔다. 같이 밥도 먹고, 당구도 쳤다.” 양의지의 회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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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을 마친 뒤 둘의 운명은 달라졌다. 복귀 후 신인상까지 거머쥔 양의지는 2차례 한국시리즈 우승과 함께 두산 왕조를 이끌었다.

반면 원종현은 가시밭길의 연속. 팔꿈치 부상과 갑자기 제구력 난조에 빠지는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에 시달리다가 LG에서 쫓겨난 뒤 자비로 수술을 하며 1년 6개월의 지루한 재활 과정을 거쳤다. 오갈 데 없던 그는 2011년 전남 강진에서 열린 신생 NC의 입단 테스트를 거쳐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2년간 2, 3군을 전전하다 오버핸드스로에서 스리쿼터형으로 투구 폼을 바꾸면서 구속이 시속 155km까지 올라 NC 불펜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2015년 28세 나이에 대장암 2기 판정을 받고 수술과 12차례의 항암치료를 견뎠다. 심한 헛구역질과 구토에 머리카락이 빠져 삭발까지 했어도 독하게 버틴 끝에 2016년 복귀했다.

원종현은 1군에서 단 1개의 공이라도 던지면 여한이 없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어떤 역경도 견뎌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위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재기라고 강조했다. LG 방출 후 서울에 머물며 몸부림칠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뒷바라지 덕분이었고, 새롭게 NC가 출범해 기댈 언덕이 돼준 것도 행운이었다. 최일언 투수코치가 없었다면 투구 폼도 바꿀 수 없었다. 미국 전지훈련에서 안색이 안 좋은 그의 귀국과 암 검사를 권한 건 김경문 당시 NC 감독이었다. 암 발견 전에 만나 투병할 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야채, 닭가슴살 등 건강 도시락을 챙겨준 여자친구는 평생의 반려자이자 두 딸의 엄마가 됐다.

양의지 역시 유승안 김경문 김태형 감독 등 포수 출신 지도자를 두루 거치면서 기량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두 선수는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모은다. “젊은 나이에 겪었던 어려움이기에 이젠 웃으며 얘기할 수 있다. 많은 은혜를 입었으니 잘 갚아야 한다. 절실한 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어느덧 올해 달력도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코로나19로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연말이다. 한창 푸르게 싹을 틔워야 할 청춘에게 세상은 잿빛처럼 보일지 모른다. 20대 초반 미생이던 원종현과 양의지도 그랬다. 하지만 시련과 고난에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준비했기에 기회를 잡았다. 누군가가 곁에서 힘이 돼준다면 희망은 더 가까운 데 있을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기를.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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