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아이의 마음으로 기린을 보았다

민동용 기자 입력 2020-11-28 03:00수정 2020-11-28 03: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군지 메구 지음·이재화 옮김·최병선 감수/240쪽·1만4000원·더숲
다 자란 기린 수컷은 키가 5m 정도 된다. 평균 목 길이는 약 2m, 무게는 130∼180kg인데 머리만 약 30kg이라고 한다. 수컷끼리는 이 긴 목을 서로 엇갈려 세게 부딪히는 네킹(necking)을 통해 우열을 가린다.

이 책은 ‘(기린의) 몸속은 틀림없이 재미있는 수수께끼로 가득할 거야’라고 믿은 일본 도쿄(東京)대 1학년 여학생이 기린의 ‘여덟 번째 목뼈(경추·頸椎)’를 찾아내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1989년생인 ‘기린 박사’ 저자는 18세 때 ‘평생 즐거운 일, 힘들어도 계속 즐기며 좋아할 수 있는 것’을 기린에게서 찾았다. 동물원에서 그 동물을 몇 시간이고 볼 수 있었던 어렸을 적 자신을 떠올린 것이다.

기린을 연구하고 싶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 그에게 운명같이 길이 열렸다. 기린 연구의 권위자인 스승은 ‘당연히 연구할 수 있다’며 방향을 제시해줬고, 전국의 여러 동물원에서는 기린 사체를 해부할 기회를 잇달아 제공했다.

주요기사
크리스마스도 설날도 상관없이 죽은 기린이 왔다고 하면 어김없이 학교 종합연구박물관 작업실이나 인근 박물관으로 달려가 해부용 검은 운동복을 입고 메스를 들었다. 첫 해부 때 ‘근막을 보고 당황해 제대로 해부도 못 하고 침울해’하던 저자는 해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기린이 좋아지고 연구 주제도 잡게 된다.

기린이 목을 움직일 때 7개의 경추뿐만 아니라 제1흉추(胸椎·등뼈)도 움직인다는 것을 발견한 그의 논문은 2016년 2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과학학회인 영국왕립협회 학술지에 발표된다.

연구가 결실을 맺을 때까지 저자가 분명히 겪었을 난관들은 투박하고 무구한 글 속으로 살그머니 녹아든다.

‘그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것을 추구하고 싶다는 마음의 하나’로 연구의 길로 들어섰다는 그의 ‘아이 같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다 읽고 나면 담백한 오차즈케를 한 그릇 먹은 느낌이 든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군지 메구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