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와 균형… ‘모차르트 드라마’를 다시 쓰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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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예권, 모차르트 작품집 발매
19세기 낭만주의적 해석 벗어나
강약 절제하며 담담하게 그려내

불꽃놀이처럼 휘황한 기교가 난무하는 리스트의 연습곡보다, 깃털에서 강철을 오가는 강약 변화에 ‘커다란 손’까지 필요한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보다 어려운 피아노곡이 모차르트의 소나타들이다. 이 말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전설이자 정설이다. 모차르트의 피아노곡은 타건(打鍵)과 분절법(프레이징)의 정교함을 낱낱이 드러내며, 천진함의 표면 아래 숨은 기쁨과 비애까지 표현해야 한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1)이 2017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처음으로 스튜디오 녹음 앨범(사진)을 내놓았다. ‘모차르트’라는 간명한 타이틀에 모차르트의 소나타 8, 10, 11, 13, 16번과 환상곡 두 곡, 론도 K 511 등을 담았다.

두 장으로 이루어진 앨범은 ‘하얀’ 1번 CD가 비교적 밝고 명징한 작품을, ‘검은’ 2번 CD가 (‘쉬운 소나타’ K 545를 제외하면) 한층 내면적이고 심각한 세계를 담았다. 단조 환상곡 두 곡과 유난히 심각한 소나타 8번, 론도 a단조다. 선우예권은 “모차르트 음악은 단순하고 깔끔한 캐릭터뿐 아니라 굉장한 드라마가 가득하다”고 말한다. 앞 CD에서 뒤로 진행되면서 그 드라마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셈이다.

모차르트의 드라마를 19세기 낭만주의적으로 해석하는 흔한 오류에서 선우예권은 살며시 벗어난다. 강약의 다이내믹을 절제했고, 특이한 표정으로 경탄을 자아내려 하지 않는다. 분절법은 비교적 긴 호흡으로 이어가지만 낭만주의 작품처럼 길어지지 않는다. 안쪽 성부의 균형을 잘 잡아 속을 잘 채우면서 선율과 베이스의 ‘놀이’를 방해하지 않는다.

이 앨범에는 부록이 있다. 끝 곡인 론도 K 511 악보에 연주자 자신이 연필로 메모한 ‘특별한’ 악보다. 연필 선의 느낌을 살려 인쇄했다. 앞부분 일곱째 마디의 장식음에 선우예권은 ‘노래하듯이, 그러나 지나치게 낭만(주의)적이지 않게’, 중간부 앞쪽 악상이 고조되는 부분의 포르테(f) 기호에는 ‘기호를 글자 그대로만 해석하지 말자, 포르테(강하게)나 피아노(여리게)는 수많은 의미와 소리의 층을 담고 있다’고 메모했다. 작품 해석을 넘어 이 앨범에 담은 여러 특징에 대한 힌트를 주는 셈이다.

녹음은 8월 독일에서 진행됐다. 마이크를 악기에서 다소 떨어뜨린 것 같다. 느리고 고요한 악구에선 미세한 저역의 마찰음이 들려 종종 집중을 떨어뜨린다.

최근 소속 기획사를 마스트미디어로 옮긴 선우예권은 12월 30일 광주문화예술회관을 시작으로 대전 부산 대구 서울 서귀포에서 모차르트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연다. 서울에서는 내년 1월 2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선우예권#절제#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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