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왕국과 반세기의 번영[임용한의 전쟁史]〈135〉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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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제국의 새로운 수도를 물색하다가 이스탄불을 선택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이 도시를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명명하고, 여태껏 볼 수 없었던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했다. 이스탄불은 매력적인 도시다. 동로마제국 시절의 콘스탄티노플은 현재의 모습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울 정도로 웅장하고 환상적인 도시였다.

거대한 궁전과 전차 경주장, 도시 곳곳에 조성된 황제들의 광장. 콘스탄티누스는 제국 내 주요 도시에 있는 최고의 조형물을 콘스탄티노플에 헌정하게 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 있던 거대한 아테네 상,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 마당에 있는 세 마리의 뱀 형상을 한 페르시아 전승 기념비, 현재는 베네치아에 있는 네 마리의 청동 말 등 수많은 조형물이 이 도시의 영광을 장식했다.

그러나 이 도시를 감싸고 있는 훌륭한 성벽이 없었더라면 콘스탄티노플의 영광도 지속될 수 없었다. 로마 건축술의 정점인 3중 성벽은 대포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었던 철벽이었다. 이스탄불의 신비한 매력 중 하나인 환상적인 코발트빛 바다는 깊은 수심과 암초로 도시를 보호해 주었다. 동로마제국의 군대는 대단히 전문적이고 짜임새가 훌륭했다.

성벽과 군대의 보호 아래서 도시는 무역으로 엄청난 수입을 올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매일같이 성벽과 바다를 보면서도 도시 사람들은 국방의식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생각으로야 국방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겠지만, 국방에 들어가는 돈을 아까워하고, 군무를 귀찮고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부가 넘쳐나니 외적의 침입이 그치지 않는 도시였다. 나중에는 사방이 적이었다. 그런데도 위기 극복의 노력은 점점 더 약해지고, 자신보다는 타인의 힘에 의존하려고 한다. 그래도 천년을 버텼으니 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만, 천년 이상도 갈 수 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경제 부흥을 이룬 지 반세기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천년 왕국의 분위기를 닮아가고 있다.
 
임용한 역사학자
#콘스탄티누스 황제#이스탄불#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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