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 만들던 탄약공장서 창의성 키워주는 ‘아트탄약’ 만들어요” [전승훈 기자의 디자인&콜라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3일 15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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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개막하는 강원키즈트리엔날레2020


“전쟁에 쓰이는 총알을 만들던 탄약정비공장에서 예술가들이 미래 꿈나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줄 ‘아트탄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한젬마 강원키즈트리엔날레 예술감독)

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접경지역인 강원도에는 전쟁과 분단의 긴장감이 여전하다. 하지만 철책과 철조망이 뒤엉켜 있는 이 곳에 곧 예술의 꽃이 활짝 피어날 전망이다.

22일 개막해 다음달 8일까지 열리는 국내 최초의 어린이 시각예술축제 ‘강원키즈트리엔날레 2020’이다. 옛 군부대 탄약정비공장과 와동분교, 홍천미술관 일대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의 주제는 ‘그린 커넥션’이다. 자연과 환경, 동심을 의미하는 ‘그린(Green)’과 경계를 넘는 평화를 의미하는 ‘연결’(Connection)의 합성어다. 총 11개국 110명의 국내외 작가(어린이 작가 포함)가 참여하고, 350여 작품이 전시된다.




대표적인 전시인 ‘아트탄약전’이 열리는 곳은 강원 홍천군 결운리에 있는 제11기계화보병사단의 옛 탄약정비공장. 1973년 준공 당시부터 놓여 있던 폭발 방호벽, 컨베이어벨트와 탄약도장용 회전기계 등의 시설물들을 그대로 전시장 인테리어 소품으로 재활용했다. 이 곳에는 ‘행복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한 스페인 출신의 에바 알머슨을 비롯해 50여 명의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과 온라인 영상콘텐츠를 볼 수 있다. 작가가 직접 작품을 설명하고 예술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 ‘아티스트 박스’ 동영상은 인터넷으로도 공개돼 어린이 예술교육을 위한 ‘아트탄약’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외부 마당에는 임옥상 화백의 ‘평화의 나무’와 순례길이 설치되고, 최정화는 탱크에 현충원에 헌화됐던 조화(造花)를 입혀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또 다른 주목할만한 전시장은 와동분교. 1954년 개교한 후 62년의 역사를 끝으로 2015년에 폐교돼 잡초가 무성했던 곳이다. 유관순, 이순신, 방정환 선생의 동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와동분교는 어린이들을 위한 ‘예술학교’로 다시 태어났다. 와동분교의 외부 벽과 벤치, 의자, 교실은 비주얼 아티스트 빠키(박희연) 작가의 알록달록한 문양의 작품으로 단장됐다. 운동장에는 이 학교 졸업생인 박대근 작가의 ‘해피 버블버블’이 설치됐다. 비눗방울이 퍼져나갈 때 행복과 안도감을 표현한 작품으로, 수많은 타일조각으로 색이 입혀졌다. 능평리 마을주민과 와동리 동네 아이들, 화동초교 동창생들까지 자유롭게 조각을 붙이며 참여했다. 독일과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설치미술가 한석현 작가의 작품 ‘다시, 나무’ 도 인상적이다. 과거 이 학교에 심어져 있던 아름드리나무를 되살려낸 이 작품은 아이들이 안에 들어가 노는 ‘예술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교실 내부에는 자연, 환경, 평화, 동심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전시돼 축제가 끝난 후에도 ‘아트스쿨’로 활용될 예정이다.




세 번째 전시장인 홍천미술관은 1956년에 지어진 구 홍천군청 건물(등록문화재 108호)을 문화시설로 활용하는 것으로, 노후 공공시설의 모범적인 재활용 사례로 꼽힌다. 만 6세~13세 미술영재, 자폐 및 발달장애 미술영재, 국제미술공모전 당선 어린이 등 총 51명의 어린이 작가 작품이 전시된다.

강원키즈트리엔날레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해 강원도 전역에 문화올림픽 유산을 확산시키기 위해 마련된 행사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에도 축제가 차질 없이 열리도록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진행된다.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1시에 작가들이 직접 참여하는 어린이 예술체험 아트클래스가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다. 또 가수 인순이, 디자이너 이상봉, 배우 윤석화, 이광기, 아나운서 손미나, 보자기 예술가 이효재, 유튜버 대도서관 등 어린이 예술교육에 관한 명사들의 토크도 온·오프라인으로 펼쳐진다. 1호 미술전문 MC, 방송미술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한젬마 예술감독은 ‘그린 커넥션’이란 주제에 맞춰 초록빛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한 채 매일 MC로 나선다. 3곳의 전시장을 모두 체험하고 스탬프를 받은 어린이들에겐 ‘강원키즈트리엔날레 예술교육 수료증’을 줄 예정이어서 학부모들의 관심도 높다.

한 예술감독은 “축제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예술놀이터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며 “일회성 축제서 벗어나 어린이는 물론 연인, 친구, 가족들이 즐겁게 찾을 예술명소를 지역의 자산으로 남긴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 한젬마 강원키즈트리엔날레2020 예술감독 인터뷰


강원키즈트리엔날레2020의 한젬마 예술감독은 베스트셀러 ‘그림 읽어주는 여자’의 작가이자 미술전문 MC, 미술방송인, 아트콜라보 디렉터로 유명하다. 선화예고와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는 화가이기도 하다.

한 감독은 “화가로서 방송에 나와서 미술전문 MC로 활동할 때 화단에서 ‘딴따라’라고 욕을 많이 먹었는데, 강원키즈트리엔날레를 준비하면서 내가 방송일을 했던 경력에 새삼스럽게 감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로 현장을 찾는 관객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상태에서 현장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며 온라인 콘텐츠를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한 감독은 ‘그린 커넥션’이라는 주제에 맞춰 머리카락을 초록색으로 염색하고, 그린색 재킷과 치마, 구두까지 온통 그린 패션으로 무장한채 전시장을 오간다.

―코로나가 바꾼 미술전시장 풍경은 어떤 것인가.

“코로나 이전에는 좀더 작가, 생산자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소비자 중심으로 변해가고 있다. 예전에는 작가의 작품제작에 관객이 참여하는 것이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그 조차도 어려운 상황이다. 임옥상, 최정화 작가도 아이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100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모여서 작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15명씩 7,8회에 나눠서 작업을 해야 한다. 작가 입장에서 볼 때는 훨씬 힘들어진 상황이지만, 소비자나 관람객 입장에서는 더 좋은 기회다. 100명 중의 한명으로 참여하는 것과, 15명 중의 한명으로 작가와 만날 때 질적인 차이는 크다.”




―예술감독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했나.

“예전에는 미술전시회가 개막을 하면 감독이 전시기간 내내 행사장을 지킬 필요는 없었다. 예술감독은 작가선정과 설치까지가 주 임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행사장으로 관람객이 오는 것으로 행사가 진행되지 않는다. 행사 내용을 촬영해서 인터넷으로 공개해 외부에서 소비되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은 비엔날레 감독이 직접 도슨트로 설명해주는 것을 기대하는데, 도슨트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스킬이 필요하다. 3주간 매일 홍천으로 출퇴근하면서 MC를 보게 됐다. ‘미술 MC’라는 타이틀도 다시 쓰게 됐다.”

―코로나 속에서 전시는 어떻게 진행되나.

“관람객은 1시간에 30명으로 제한된다. 하루에 8회 입장 가능하다. 전시장이 3군데니까 하루 관람객은 720명이 최대다.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1시에 작가들의 아트클래스가 진행된다. 작가들의 작품 체험프로그램인데, 교육청을 통해 수업 대용으로 사용하라는 공지가 나갈 예정이다. 전세계의 50명의 작가들이 20개씩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예술체험 도구인 ‘아티스트 박스’를 만들었다. 총 1000개다. 이 중 매일 5개씩 인터넷 이벤트를 통해 온라인 관람객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갖고 직접 만든 도구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작품감상과 놀이, 체험, 교육이 한꺼번에 이뤄질 수 있다.”




―행사가 펼쳐지는 와동분교는 어떤 곳인가.

“62년간 운영되던 학교가 2015년 폐교돼 폐허가 될 위기였다. 여기에 ‘다시 나무로’라는 한석현 작가의 죽은 나무로 다시 나무를 세운 설치작품을 통해 학교의 부활을 선포하고 있다. 그외 여러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운동장은 예술놀이터, 교실은 작품화된 아트클래스로 재탄생했다. 감상의 대상이었던 공공조형물은 관람에서 놀이기구로 그 몫을 확대한 예술가의 노력이 담겨 진정한 예술놀이터의 현장을 탄생시켰고, 신관 교실에서는 단지 예술 수업이 이루어지는 곳으로서의 공간개념을 넘어서 천장 벽 바닥이 작품으로 입혀지고 설치됨으로써 그 자체가 예술품이 된 교실로 재단장됐다. 운동장의 이순신, 거북선, 유관순, 이승복, 방정환 선생 등의 옛 교정의 동상들 사이로 현대 작가의 작품들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과거 현재의 소통을 전시화하고, 구관의 교실은 옛 교실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 어린이 창조교육의 자료를 제공하는 아트키즈플랫폼과 아트키즈 오픈 스튜디오를 마련하여 한껏 창작을 할 수 있는 어린이 아틀리에로 재편했다.”

―군부대 탄약정비공장이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는데….

“총알을 정비하던 공장을 교육컨텐츠 정비소로 개념을 바꿨다. 예술가의 작품을 탄약으로 비유하고, 예술가의 작품을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콘텐츠로 정비시켜 미래의 꿈나무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의 무기로 전환해 선보이는 전시장인 셈이다. 일명 ‘아티스트박스’로 명명한 온오프 디지로그 비대면 자율 학습이 가능한 예술의 도구를 탄생시켰다. 이번 축제를 통해 진정 예술의 몫이 무엇인가. 예술가는 이 시대에 어떤 기여를 해야 하는가, 이 시대적 질문의 답처럼, 본 행사는 시대 맞춤형 교육 콘텐츠 탄생을 이끌어낸 것이다. 예술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모티브로 참여형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영상화시키고 아티스트의 개성이 넘치는 도구 박스를 선보임으로서 단지 도구나 놀이를 넘어선 예술이 줄 수 있는 다양한 상상의 세계를 꺼내고 연결하는 징검다리와 같은 ‘아트탄약전’을 마련한 것이다. 고미술에서 현대미술까지.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에바 알머슨과 같은 스타작가에서 국내 최고 아티스트 최정화, 임옥상, 홍승혜, 빠키, 한석현, 이진경, 아트놈, 박대근 등을 비롯한 10개국 50명의 국내와 작가들로. 게다가 탄약정비공장 앞마당에 한국 대표 민중 설치예술가 임옥상의 ‘평화의 나무’설치작과 설치예술가 최정화의 현충원에 헌정되었던 꽃을 수거하여 재사용한‘플라워 파워’ 탱크 설치작품은 평화를 향한 염원과 발현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이번 축제를 준비한 과정은.

“예술감독으로 선정된 올해 3월 말은 참혹했다. 코로나 19로 학생들은 등교가 금지됐고, 온라인수업조차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 시국에 어린이 미술축제 감독으로 선정됐고, 세상 밖에 그 소식을 알리기도 조심스러웠다. 시대는 바뀌는데 축제에 대한 관념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언택트’라는 신종용어가 급습했고, 비대면, 온라인, 초연결, 안전과 방역이 강조됐다. ‘그린’은 환경을 넘어서 우리 미래꿈나무들을 위한 구원의 방향성이 돼야하고, ‘컨택트’(접촉)는 불가하지만 ‘커넥션’(접속)이 방향성이 된 것이다. 행사개최는 최악의 설정을 가상하고 준비했다. ‘전시장에 사람들을 모으기 힘들다. 아니 위험하다. 어쩌면 상황에 따라서는 전시장인 폐쇄될 수도 있다.’ 축제에 사람들이 못 오는데 개최한다는 것은 사실상 말이 안 되는 상상이지만, 그 어떤 시점일지라도 당분간은 코로나 19 대응 단계를 예측할 수 없으며, 최악을 설정하고 준비하는 게 안전한 상황이었다.”

―이번 전시회가 기존의 비엔날레와 다른 점은.

“개막과 폐막의 개념이 파기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행사의 개막을 기대하며 준비하지 않았다. 5월 5일 어린이날은 ‘내가 그린 그린’이라는 챌린지로 온라인으로 어린이 참여의 숨통을 트이게 했고, 공모전, 자문단 모집등의 프로그램으로 행사준비자체의 여정을 축제의 컨텐츠로 오픈했다. 행사는 이미 시작했으며, 끝나도 끝나지 않는 전시로 주제와 행사 준비 방향을 설정하였다. 둘째, 온라인 활용을 통한 초연결 접속으로 더욱 폭넓은 관객확보로 계획했다. 행사장 콘텐츠를 외부로 내보낼 온라인 프로그램 편성을 통한 축제 기간 내내 방송을 활용한 교육프로그램 중심의 유용한 행사로 준비했다. 코로나 시국 전이었다면 물밀듯 밀려왔을 어린이들의 장소였겠지만, 장소성 대신 콘텐츠 중심의 실어나르기 전략을 모색한 것이다. 셋째, 행사의 콘텐츠는 폐막 후의 상용화 용도가 극대화되어서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행사가 끝나면 전시물이 철거되고 비게 되는 전시장의 모습이 되지 않도록 했다. 행사비용으로 제작된 예술가 상자와 같은 교육 영상 및 꾸러미 콘텐츠는 행사 이후 더욱 폭넓게 상용화할 기회를 열게 될 것이고, 행사장의 공공미술품은 놀이기구로서 영구히 자리매김 될 것이고, 특히 폐교였던 학교가 본 기회로 아트스쿨로 재탄생되고, 의미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관광지가 될 것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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