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희생자 기념관이 바닷가에 세워지는 이유는?[전승훈 기자의 디자인&콜라보]

전승훈 기자 입력 2020-10-10 14:00수정 2020-10-1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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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지구의 중심이 아니라 자연에 종속된 존재” 독일 베를린 중심가에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있다. 물결치는 파도처럼 2700여개의 콘크리트 비석이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정권하에서 자행된 유태인 학살을 기억하고 반성하게 한다. 9.11테러가 발생한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곳인 그라운드제로(ground zero)에는 ‘9.11테러 희생자 기념비와 박물관’이 있다. 비극적인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함과 동시에 생명의 소중함, 종교간 갈등, 인류애와 평화에 대한 희망을 성찰하기 위한 공간이다.

전세계에서 106만 명이 넘게 사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희생자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공간도 기획되고 있다. 남미의 우루과이의 건축 디자이너가 설계한 ‘세계 팬데믹 기념관’(World Memorial to the Pandemic)이다. 코로나19 희생자를 기억하는 세계 첫 대규모 기념건축이다.

지난해 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코로나19’는 현재까지 218개국에서 3600만 명의 확진자를 발생시켰고, 휴교와 공공시설 폐쇄, 여행금지 등 지구촌 도시를 락다운(lockdown)으로 몰고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최고등급의 전세계적 유행병인 ‘팬데믹’의 무시무시함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우루과이 세계 팬데믹 기념관
‘세계 팬데믹 기념관’은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 인근 해변에 설치된다. 건축회사인 고메즈 플라테로가 공개한 디자인에 따르면 이 기념시설은 직경 40m 크기의 오목한 원형 접시 모양이다. 해안으로부터 이어진 기다란 보도는 기념물의 갈라진 틈으로 인도한다. 틈을 통해 오목한 원형 접시 모양의 플랫폼에 오르는 순간 도시의 소음과 풍경이 사라진다. 관람객들은 침묵 속에서 오로지 바람과 파도와 같은 자연에 둘러싸인다. 콘크리트와 코르텐강(내후성강판)으로 만들어지는 원형 플랫폼 위에서는 서로간의 안전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300명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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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를 맡은 건축 디자이너 마틴 고메즈 플라테로 씨는 “코로나19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지만, 인류가 더 이상 지구 에코시스템(생태계)의 중심이 아니며, 자연에 종속된 존재라는 집단적인 자각을 일깨워주는 반성과 성찰의 기념물”이라고 설명했다.

“팬데믹의 글로벌한 충격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지도를 탄생시켰다. 코로나19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습관, 서로간에 연결되는 방식을 바꿨다. 둥근 원형은 전지구의 통합과 일치, 커뮤니티를 상징하며, 깨어진 틈은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이자 단절을 상징한다.”

원형 플랫폼의 깨어진 틈은 ‘Before 코로나’(BC)와 ‘After 코로나’(AC)로 나뉘듯이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시대의 흔적이다. 이 기념관에서 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오목한 원형 플랫폼의 가운데 부분에 뚫린 직경 10m 가량의 텅빈 허공이다.

빈 공간의 밑으로는 바닷물과 파도가 드나들고, 울퉁불퉁한 해변의 바위도 모습을 드러낸다. 이 때문에 관람객들은 중심부에 설 수 없으며, 둥근 원형의 주변에 서서 온통 자연에 둘러싸인 채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지구 에코 시스템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며, 인간은 자연에 종속된 주변적 존재’라는 코로나19의 교훈을 그대로 형상화해낸 건축물이다. 텅빈 공(空)의 상태에서 자연이 생겨났으며, 우리도 언제든 깨어져 공(空)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진실을 겸허하게 전달해주는 은유가 아닐까.

팬데믹 기념비가 세워지는 장소가 해변가 바다 한 가운데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디자이너는 “기후변화로 이 기념물은 언젠가 수평선 밑으로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류가 지구의 중심이라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플라스틱 문명이 파괴해 온 자연의 모습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다다. 작은 환경적 충격만으로도, 우리의 삶이 언제든 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코로나19’는 확인해주었다.

디자이너 플라테로 씨는 “건축은 세상을 바꿀 강력한 도구”라며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기억과 감각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시대를 뛰어넘는 집단적이고, 역사적인 진실을 담아내는 것이 기념비 건축의 의미”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산시로 경기장 코로나 추모공원
코로나19를 기리기 위한 건축가들의 또 다른 기념시설 아이디어도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 건축가인 안젤로 레나는 밀라노의 산시로 축구경기장에 3만5000그루의 나무를 심자고 제안했다. 1926년부터 AC밀란과 인터밀란의 홈구장으로 쓰이고 있는 유서깊은 산시로 스타디움은 현재 철거되고 새로운 경기장 신축이 예정돼 있다.

안젤로 레나는 1934년과 1990년 월드컵 경기가 펼쳐진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역사적 명소인 산시로 경기장을 철거하는 대신,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로 희생된 3만5000명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그라운드 주변과 관중석 곳곳에 심어 새들과 자연이 살아 숨쉬는 친환경이고 영적인 공원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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