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요, 헹궈요, 분리해요”… ‘연두색 조끼’ 자원관리도우미가 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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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만5000개 아파트에 1만명 투입

지난달 16일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자원관리도우미들이 플라스틱 분리수거함을 정리하고 있다. 이들은 주민들에게 헷갈리기 쉬운 분리배출 방법을 알려주거나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을 홍보한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지난달 16일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자원관리도우미들이 플라스틱 분리수거함을 정리하고 있다. 이들은 주민들에게 헷갈리기 쉬운 분리배출 방법을 알려주거나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을 홍보한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그건 재활용 수거함에 넣으시면 안 돼요. 알약 포장재는 플라스틱과 다른 재질이 섞여 있어서 일반 쓰레기로 버리셔야 해요.”

9월 16일 오후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 분리수거장. 연두색 조끼를 입고 카우보이 모자를 쓴 여성이 플라스틱 수거함에 알약 포장재를 넣으려는 주민을 불러 세웠다. 28년 차 주부이자 ‘자원관리도우미’인 정성란 씨(53·여). 그의 조끼 등 부분에는 ‘비워요’ ‘헹궈요’ ‘분리해요’ ‘섞지 않아요’라는 단어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포장 및 택배 폐기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올 상반기 비닐과 플라스틱 폐기물은 전년 동기 대비 11.1%, 15.6% 늘었다. 유가 하락으로 인해 재활용 플라스틱 단가도 지속적으로 떨어져 수익성이 낮아지면서 쓰레기 수거 대란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경부는 아파트와 선별장 등에서 분리배출을 돕는 자원관리도우미 1만여 명을 올해 말까지 현장에 투입한다. 지난달 8일 1기로 뽑힌 5120명이 먼저 활동을 시작했고, 이달 2기로 5600명이 추가로 뽑혔다. 이들 중 95%가량은 2인 1조로 전국 1만5000여 개의 아파트단지 중 4, 5개씩을 담당해 주민들에게 분리배출 방법을 안내한다. 나머지 5%는 전국 143개의 공공·민간 재활용품 선별장에서 이물질을 제거하거나 전산 업무를 돕는다. 이들은 12월 14일까지 활동한다.

자원관리도우미들은 헷갈리기 쉬운 분리배출 방법을 알려준다. 주민들이 들고 오는 간장 찰랑이는 페트병, 고춧가루 묻은 즉석밥 용기, 반찬이 남아 있는 일회용 도시락 용기는 플라스틱이지만 재활용할 수 없다. 이물질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자원관리도우미들은 “다음부터는 씻어서 배출해 달라”고 안내하며 이들을 일반쓰레기 수거함으로 보낸다. CD나 고무장갑 등 일반쓰레기이지만 재활용이 된다고 착각하기 쉬운 쓰레기들도 선별 대상이다. 추석 이후에는 선물세트 관련 쓰레기 선별에 특히 신경을 쓰고 있다. 자원관리도우미 김아름 씨(26·여)는 “추석 이후에는 종이상자가 크게 늘었다”면서 “테이프를 제대로 떼서 버리도록 주민들에게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을 홍보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환경부의 ‘재활용가능자원의 분리수거 등에 관한 지침’ 개정안에 따르면 올 12월 25일부터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이 의무화된다. 투명 페트병은 섬유 등 고품질 재활용 원료로 이용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유색 페트병이나 일반 플라스틱과 함께 배출돼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 생수병을 한 아름 버리러 나온 박은희 씨(59·여)는 “투명 페트병을 따로 버려야 하는지는 몰랐다”며 “앞으로 라벨도 꼼꼼히 제거하겠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자원관리도우미를 통해 재활용 선별 효율을 11% 높이고, 재활용 과정에서 쓰레기로 배출되는 이물질을 7%가량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원관리도우미의 활동에 주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방침에 반발하는 주민도 있었다. 한 중년 여성은 도우미의 제지에도 아랑곳 않고 라벨이 붙은 투명 탄산수 페트병 수십 개를 플라스틱 수거함에 와르르 쏟아 넣었다. 그는 도우미들의 안내도 다 듣지 않고 “주민들에게 귀찮은 일만 시킨다”고 말한 뒤 사라졌다.

현장에서는 자원관리도우미 활동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령 도우미가 방문하는 날이 해당 아파트의 분리배출 날과 맞지 않아 홍보물만 배부하고 마는 경우도 있다. 1기 채용 당시 하루 근무시간이 3시간으로 짧아 이후 더 좋은 조건의 공공일자리로 도우미들이 빠져나가기도 했다. 한국환경공단 관계자는 “사업 초기라 미진한 경우가 있었다”며 “2기 도우미를 배치하면서 근무시간도 늘리고 인력 배치를 세심하게 하는 등 체계 개선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재생원료 활용을 늘리고 포장재를 줄이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현경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는 “기업이 상품을 생산할 때부터 재활용하기 쉬운 재질과 구조로 만들 수 있게 독려하고, 과대 포장을 할 수 없게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올바른 분리배출 방안
▽페트병: 내용물 비우기→라벨 제거→찌그러뜨리기→투명과 유색 분리해 배출

▽신문·책자류: 스프링 등 종이류와 다른 재질은 제거 후 배출

▽종이팩: 일반 종이류와 구분해 전용 수거함에 따로 배출

▽플라스틱류:
이물질·물기 제거 후 배출

자료: 환경부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자원관리도우미#분리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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