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제 무덤 파기 될 文정권의 ‘코로나 책임전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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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법무의 檢인사 훗날 사법적 심판 받아봐야
대선 승패 변수는 野의 중도 확장성인데
文정권의 극우 겨냥 코로나 마녀사냥이
野 스스로 하기 힘들었던 극우 결별 가능케 해

이기홍 논설실장
이기홍 논설실장
추미애 법무장관의 검찰 인사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그런데 필자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추 장관의 인사는 공정-불공정을 따져 결론 낼 1회적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사법 심판대에 올려 위법,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을 받아봐야 할 사안이다.

법조인들 의견을 들어봤다. 인사권을 활용해 권력견제기관을 장악하는 노하우를 가르치는 교과서가 있다면 전범(典範)으로 수록될 만한, 민주화 이후 어떤 정권도 엄두내지 못했던 수준의 ‘대담한 인사’였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처벌 가능 여부에 대해서는 합법적 인사권 행사라는 방어논리를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과, 외형상 인사권의 외피를 입었다 해도 불순한 목적, 즉 자신과 정권을 향한 수사를 방해하기 위한 의도성만 입증되면 유죄 판결이 가능하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사건의 경우 지원 대상 선정이 정부 권한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명단과 파일 등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유죄의 스모킹건이 됐다.

추 장관의 인사도 쫓아내야 할 검사 명단, 검사 성향 분석 보고서, 카톡 문자 같은 게 훗날 발견된다면 직권남용 혐의를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헌법이 보장한 표현·사상의 자유를 침해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작태였지만 기획자들 나름대로는 문화계 좌편향을 고치겠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정권 의혹 수사팀들을 공중분해시킨 행위는 정권 핵심부의 보신이라는 철저히 사적인 이득을 목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훨씬 질이 나쁘다.

물론 추 장관의 행위를 사법 심판장에 올리는 것은 정권이 바뀌어야만 가능하다. 정권교체의 가장 큰 변수는 야권이다.

그제 의사-간호사 갈라치기에서도 드러났듯 기득권 타도 투쟁의 선봉대장, 진영(陣營)의 수장을 자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과 정책수준은 앞으로도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차기 대선의 향배는 야당이 얼마나 업그레이드되느냐에 달렸다. 관건은 중도층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체질 변화이고, 그 핵심은 집권세력이 아무리 형편없는 짓을 해도 도저히 통합당(국민의힘)은 찍고 싶지 않다는 정서를 생성시킨 근원, 즉 낡은 우파·극우세력과의 단절에 있다.

단 전광훈목사나 옛 통합당 출신 막말 정치인들 유(類)의 인물들과 다수 시민은 구분해야 한다. 지난해 조국사태 때 광화문을 메웠던 수십만 시민 대다수는 특정 종교세력이나 극우성향 정치인과 무관했다.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하고, 과거 6월민주항쟁 대열에도 참여해 독재타도를 외치거나 박수를 쳤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승만 박정희 시대의 성취마저 부정하는 것은 반대하며, 역사의 공과(功過)· 명암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상식을 가진,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시민들이다.

전체주의·국가주의 같은 극우적 주장을 펴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런 성향은 오히려 좌파 팬덤정치 집단 쪽에서 더 짙게 발견된다.

하지만 보수는 조직이 없다. 좌파엔 노조, 시민단체 등 무수한 활동가와 네트워크, 대중동원 물적 토대가 있지만 보수는 그저 모래알 같은 시민들이다. 그 틈을 극단적 종교세력이 파고들었고 황교안처럼 옛 관념에 젖어있는 야당 지도부는 그 손을 잡았다.

야당이 머릿속으로는 극우와 결별해야지 하면서도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문 대통령이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2차 대유행이 시작되자 책임을 전목사와 광화문집회 탓으로 몰아갔다. 그제 만난 한 자영업자는 영업중지 피해를 호소하면서 “전광훈 때문에 망하게 생겼다. 그 자한테 손해배상을 청구해야겠다”며 분개했다. 실제로 코로나 대유행이 전목사 세력과 광화문집회 때문이라고 여기는 국민이 적지 않다.

2일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발표를 보자. 사랑제일교회 첫 확진자가 발생한 8월 12일부터 2일 현재까지 이 교회 관련 누적확진자는 총 1117명(교인 및 방문자 585명, 추가 전파 430명, 조사 중 102명)이다. 광화문집회 관련 누적확진자는 총 441명(집회 참석 179명, 추가 전파 189명, 경찰 8명, 조사 중 65명)이다.

지난달 12일부터 2일까지 전국 누적확진자는 5789명이다. 따라서 사랑제일교회가 차지하는 비중은 19%이며, 광화문집회를 합쳐도 26%다. 즉 2차 대유행 확진자 중 4분의 3 가량은 이 교회나 집회와 무관하게 발생했다.

정 본부장은 8월에 코로나 유행이 커진 이유에 대해 “5월부터 무증상 경증 환자들이 누적되는 지역감염이 계속 있었으며, 방학과 여름휴가를 통해 인구이동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여러 모임이나 여행을 통해서 감염자들이 많이 섞이게 돼서 그것으로 인한 유행이 있었고, 또 사랑제일교회와 서울도심집회라는 증폭되는 위험요인이 가중됐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전 목사와 추종자들의 무책임하고 비이성적인 행태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책임의 상당 몫이 자신들에게 있으면서도 모든 책임을 한쪽으로 다 덮어씌우려는 집권세력의 책임몰이 역시 정당하지 못하다.

그런데 정권의 그 같은 행태가 결과적으로 야당에 극단적 세력과의 절연을 강요하는 선물을 안긴 셈이 됐다.

이런 일 없이 세월이 흘러 대선을 맞았다면 야당은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를 극우세력발 망동에 발목이 잡혔을 것이다. 당장은 좌파와 ‘낡고 상스런 막말보수’ 양측에서 공격받는 신세가 됐지만, 길게 보고 명확히 선을 긋고 절연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통진당 해산은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스스로는 걸러내지 못했던 래디컬한 근본주의 세력과 거리를 두고, 종북 과격 이미지를 벗는 데 도움이 됐다. 정권의 극단세력 집중 공격은 단기적으로는 이념 스펙트럼상 그 옆자리에 있는 제도권 정당을 움츠리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극단세력과 절연하고 중도층에게서 신뢰를 얻는 토양을 만들어준다.

문 정권의 코로나 책임 전가는 역설적으로 야당의 경쟁력을 키워주는 결과가 될 것이다. 영구집권을 외치며 오만의 극단을 달리고 있는 이 정권 인사들이 그 오만의 부메랑을 맞게 될 날을 재촉한 제 무덤 파기였다고 훗날 역사가 기록할 것이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무덤#문재인 정권#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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