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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중국은 누굴 위한 혁명을 하고 있나

입력 2020-08-29 03:00업데이트 2020-08-3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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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키스/옌롄커 지음·김태성 옮김/752쪽·2만5000원·문학동네
몸이 성치 않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 서우훠에 류 현장(縣長)이 찾아온다. 류 현장은 양부모에게서 철저한 마르크스·레닌주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어떻게 관료로 출세하는지를 체득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장애를 이용해 묘기를 부리는 서우훠 마을 사람들을 보고 야심 찬 계획을 세운다. 러시아에서 레닌의 유해를 구해와 각 현에 전시해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것인데, 유해 구입 비용은 서우훠 사람들로 공연단을 만들어 공연 입장료 수입으로 충당하겠다는 것. 농사지으며 살던 서우훠 사람들은 난데없는 공연단 조직과 레닌 유해 구매 작전으로 난리가 난다. 이 마을의 정신적 지주인 마오즈 할머니는 이 모든 소동을 못마땅하게 지켜본다.

서우훠 마을은 세상에서 잊힌 마을이었다. 장애가 있는 이들만 살았기에 명, 청 어느 시대에도 이 마을을 편입시키려 하는 행정구역이 없었다. 그 덕에 역설적으로 그곳은 오랫동안 유토피아였다. 세금을 낸 적도, 누군가의 간섭을 받은 적도 없었다. 변화가 생긴 건 소녀 시절 중국공산당 홍군 출신의 열성 혁명론자이던 마오즈가 사고로 다리를 절게 돼 마을에 정착하면서부터였다.

마오즈는 열성적으로 마을에 혁명을 도입하지만 대흉년과 문화대혁명 등의 풍랑에 휩쓸리면서 마을의 삶은 훨씬 힘들고 고단해지고 만다. 혁명적 이상이 산산조각 나며 자책하던 마오즈는 철저한 반혁명주의자로 돌아선다. 그런 그이기에 혁명을 통해 자기 야망을 채우려는 류 현장의 황당한 계획을 그냥 두고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중국 반체제 작가로 널리 알려진 저자가 우화적 가상공간인 서우훠를 통해 중국 현대사에서 혁명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과 폐해를 폭로한 작품. 작가는 이 작품 때문에 27년간 일한 군에서 쫓겨났고, 책 출판이 금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해외에서 반체제 작가로서 그의 성가를 높이는 발판이 됐다. 리얼리즘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게 일그러진 중국 근현대사의 부조리를 작가 특유의 우화적 방식으로 그려낸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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