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vs 마멋’ 누가 이길까[서광원의 자연과 삶]〈24〉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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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중앙아시아 초원에는 큼지막한 설치류(다람쥣과) 마멋이 산다. 덩치가 토끼만 하니 독수리나 매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이 사냥꾼들은 마멋이 볼 수도 없는 저 하늘 어딘가에서 조용히 빠르게 날아와 벼락처럼 덮친다.

그렇다고 쉽기만 한 건 아니다. 빠르게 덮치려면 한 곳을 노려 날아들어야 하는데 마멋이 순발력 있게 피해버리면 쭉 뻗은 발톱이 그대로 땅바닥에 충돌해 부러지고 만다. 발톱을 잃으면 사냥을 못 하니 치명적이다. 그래서 힘과 속도만 믿고 들이치기보다 노련함이 필요하다.

경험 많은 사냥꾼들은 한 점 공략이 여의치 않으면 마멋에게 최대한 접근해 쫓으면서 왼쪽 발톱으로 마멋의 엉덩이 쪽을 툭 잡아챈다. 그러면 깜짝 놀란 마멋이 엉겁결에 몸을 오른쪽으로 휙 돌리게 되는데, 바로 원하던 바다. 마멋의 몸이 가로로 놓이는 순간 오른 발톱으로 등을 확 움켜쥐고 날아오른다. 도망치는 마멋은 몸이 세로로 놓여 움켜쥐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멋이 결코 원하지 않는 비행을 하게 한다.

이러니 마멋에게 필요한 노련함은 반대가 된다. 경험 많은 마멋은 엉덩이를 잡아채여도 몸을 돌리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게 죽음으로 가는 문을 여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사냥꾼들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지 않는다. 날카로운 발톱이 옥죄어 오는데도 죽을힘을 다해 근처 풀숲이나 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사냥꾼을 끌고 들어가기도 한다. 이런 곳에선 날개가 쉽게 손상되고 잘못하면 옴짝달싹 못 할 수 있어 움켜쥔 발톱을 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다 잡은 마멋을 놓친 사냥꾼들은 닭싸움에서 진 싸움닭처럼 한참을 멍하니 있곤 한다. 어이없고 황당하다는 듯 그렇게 있다 힘없이 날아간다.

오늘도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벌어지고 있을 독수리와 마멋의 대결은 노련함이 얼마나 중요한 능력인지 잘 보여준다. 힘과 속도를 타고난 강자라도 그것만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고, 힘없는 약자라고 허구한 날 당하지 않는다는 걸 알려준다. 사실 본능은 타고난 능력이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빠르게 움직여 일단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것에만 집중한다. 빠르긴 하지만 유전자에 정해진 대로만 하니 패턴을 간파당하는 순간 위험해진다. 반면 경험을 통해 얻는 노련함은 변하는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이들의 레이스에서는 독수리나 마멋이 이긴다기보다 노련함이 본능을 이긴다.

독수리는 마멋의 본능을 이용하려 하고 마멋은 독수리의 의도대로 해주지 않아야 살 수 있다. 독수리도 감탄스럽지만 마멋의 노련함이 생각할수록 놀랍지 않은가? 우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어쨌든 우리를 이용하려는 누군가의 의도에 우리도 모르게 행동하려는 충동을 극복해야 잘 살 수 있다.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정말이지 이런 노련함은 요즘 같은 세상에 꼭 필요한 삶의 무기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중앙아시아#초원#설치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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