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과잉 정치화’가 화근이다[동아 시론/박정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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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정책 ‘갈지자’ 행보하며 혼란
이념 따른 정치적 이해개입이 원인
일관성 갖춘 K방역, 모델 삼을 만
증거 기반한 검증된 대책 추진해야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행복한 집안은 다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그 이유가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여러 요소 중 하나만 잘못돼도 전체가 실패하기 쉬우므로 여러 실패 요소를 모두 피해야만 성공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톨스토이 소설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 말은 정책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상적인 정책 의도를 가지고 부동산 대책을 마련하고 증권 거래와 관련한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데, 그 과정이 갈팡질팡하고 혼선을 빚고 있는 현재 시국에 딱 들어맞는 법칙이 아닐까. 하나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섣부른 정책 노력이 다른 원인들을 악화시킬 수 있고, 그러면 더 깊은 정책 실패의 수렁에 빠져들 뿐이다.

그린벨트 해제나 주식 양도세 강화 여부 등이 중요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과 공식 정책 발표 결과가 제각각 달라지면서 정책의 일관성은 물론 정책을 만드는 정부에 대한 신뢰마저 하락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사실에 대한 이해 부족과 지지율 하락 등을 견디지 못해 조급증에 초조해하는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론에 기초한 정책 결정과 집행이 아니라 이념에만 충실한, 정책의 ‘과잉 정치화’가 화근이다. 증거에 기반한 전문가들의 치열한 현실 진단과 대안에 대한 효과 분석을 믿고 정책 효과가 나타날 시간을 충분히 기다리면 될 것을 만병통치약 수준의 땜질 처방과 다양한 오류 가능성을 간과하는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면 우리가 목도하는 바와 같은 정책 실패를 피하기는 어렵다.

지난 3년간 서울 집값이 정부 당국은 11% 올랐다고 하고 시민단체는 52% 올랐다고 한다. 한국감정원의 주택매매가격지수를 활용한 수치와 KB국민은행의 아파트 중위가격 상승률을 각각 활용한 결과로 정책 문제를 이해하는 사실 자체에서 커다란 인식 격차가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 통계(2019년 국민대차대조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거용 부동산 자산의 가치는 지난 3년 동안 1000조 원 이상 증가한 5056조여 원으로 나타났다. 나라의 부(富)가 부동산에 쏠릴수록 부동산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빈부격차가 커지고, 장부와 실제 체감 경기 사이의 괴리만 커진다는 점에서 분명히 문제가 있다. 또한 같은 소득을 버는데 근로소득과 이자 및 배당 등 금융소득, 그리고 주식 양도소득 간에 엄연한 격차가 존재해 형평성 차원에서의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있어 왔다.

최근 우리의 자부심이 된 코로나19에 대한 방역대책, 즉 K방역은 보건복지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역량보다는 질병관리본부의 시스템과 보건 현장에 있는 의료진의 전문성에 힘입은 바 크다. 메르스와 사스 등 과거의 정책 실패를 기반으로 매뉴얼과 시스템을 갖췄고 이를 일관성 있게 집행했기에 가능했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민간 임대시장을 활성화해 전월세 시장을 안정화시키겠다던 정부가 이제는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대폭 줄이는 한편 임대차 3법을 입법화하고, 나아가 표준임대료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임대차 3법은 전월세신고제와 계약갱신요구권제, 전월세상한제를 말한다. 아직도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대출 규제와 취득, 보유 단계에서의 부동산 관련 세금 위주의 수요관리 정책과 함께 공급 확대 대책이 촘촘하게 마련돼야 한다는 점에는 전문가들의 일관된 제언이 있어 왔다. 과다하게 풀린 유동성과 초저금리로 부동산 가격이 단기적으로 상승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시계에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근로소득에 과세하고 이자나 배당소득 같은 금융소득에 과세하는 것처럼 주식을 팔아 이득이 생기면 과세가 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정책의 합리성은 단기적이고 단편적인 처방으로 확보할 수 없다. 일찍이 윌다브스키가 이야기한 것처럼 시민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실현해줘야 한다는 듯 혼동에 빠져 있지만 증거에 기반한 전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으로 점진적이고 장기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높은 이상과 목표에 집착하는 정책 패러다임으로는 정책 실패의 반복과 무모한 정책 실험의 조장이라는 폐해를 피하기 어렵다

어차피 과잉 유동성과 초저금리 현상도 무한히 지속될 순 없는 노릇이고 부동산 가격도 시간이 지나면 안정화가 되는 방향으로 수렴될 것이다. 이를 인내하고 증거에 기반한 합리적인 수요 대책과 공급 대책 등 검증된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하겠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더불어민주당#과잉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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