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3상 시험[횡설수설/구자룡]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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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영국 글로스터셔의 개인병원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한 우유 짜는 처녀가 천연두에 걸리고도 아무 증상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알고 보니 전에 우두(牛痘)에 걸렸을 때 생긴 항체가 천연두도 막아낸 것이었다. 제너는 천연두를 막는 우두 항체를 가진 사람이 많은 것에 착안해 소의 피부 반점에서 우두를 직접 추출해 인류의 첫 백신을 개발했다. 그 지방 사람들은 요즘으로 치면 ‘백신 3상 시험’ 참가자나 마찬가지다. 백신(VACCINE)이 암소를 뜻하는 라틴어 ‘VACCA’에서 나온 연유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전 세계 확진자가 1600만 명을 넘어 2차 대확산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백신에 대한 기대와 개발 열기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 모더나와 화이자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27일 나란히 백신 3상 시험에 들어갔다. 전 세계적으로 165개 백신 후보 물질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인데 3상 단계에 진입한 것이 6개다. 모더나는 11월경 시험을 마치고 내년부터 한 해 5억∼10억 회 투약분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백신 개발에 5∼10년이 필요하다는 말이 무색한 속도전이다.

▷3상 시험은 코로나 백신 시대의 문턱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청신호다. 먼저 수십 수백 명을 대상으로 안전과 효능을 시험하는 1, 2상을 거쳐 수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마지막 관문 3상을 통과하면 백신 판매가 시작된다. 모더나는 미국 89개 지역에서 3만 명 지원자를 모아 백신과 소금물 플라세보 제품을 주입하는 두 그룹으로 나눠 28일 간격으로 두 차례 접종한다. 피시험자는 물론 시험을 진행하는 의료진도 누가 진짜 백신을 맞았는지 모르게 한다.

▷백신 3상 시험은 시험 대상자들이 자연 감염되어야 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실패율도 높다. 모더나 등이 미국은 물론 브라질 남아공 등 확진자가 급증하는 곳에서 시험을 진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모더나는 최소 150명 이상이 감염돼 그중 60% 정도에서 항체가 생기면 백신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결론 내릴 계획이다. 하지만 코로나19는 S, V, GH형 등 변종이 날로 늘어나고 일부는 항체를 무력화해 백신 개발의 앞날을 너무 낙관할 수만은 없다.

▷빌 게이츠가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의 한 제약업체를 거론하며 한국이 백신 개발에서 앞서가고 있다고 했지만 ‘격려성’ 발언이다. 한국 업체는 아직 1상 시험도 마치지 못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백신 패권’을 향한 경쟁은 제약, 바이오, 정보기술(IT) 경쟁의 종합 결정판이다. 기업과 연구자의 분발, 사회와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백신#시험#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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