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읽는 법]함께 하듯 홀로 하는 기차여행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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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발 서울행 특급열차/오영욱 지음/324쪽·1만6000원·페이퍼스토리


‘회사를 그만두면 한 해쯤, 가보지 못했던 나라로 여행을 떠나자.’

그 여행이 실천하기 난감한 계획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세계 각 나라의 외국인에 대한 입국 제한이 조금씩 풀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해외여행 관련 상황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처럼 온전히 회복될 수는 없을 거다. 나라 밖으로 장기간 여행을 떠나는 결단을 내리기 어려워할 이들에게, 현지의 소리와 공기를 잡아 담아낸 듯 생생하게 쓴 여행기는 소소한 위로가 된다.

저자는 건축가보다 일러스트레이터 겸 에세이 작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대학 시절 건축과 과방 날적이(인터넷이 없던 시절 방문 흔적을 남기던 공개 일지)에 발랄한 세필화를 남겨 학우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다. 그가 여행지에서 만난 공간, 자연, 사람에 대한 기록을 그림과 함께 책으로 내고 전시하는 작가가 된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일부러 찾아 읽은 적은 없지만 15년 전 나온 첫 책부터 빠짐없이 일로 인해 읽었다. 몰입해서 탐독한 건 2년 전 출간된 이 책이 처음이었다. 아주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기에 근거가 부족한 인상이겠지만, 저자는 머물러 앉아 있는 것보다 이곳저곳 자유롭게 걸어 다니는 모습이 어울리는 인물이다. 이 책에 담긴 모든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열차 안에서 그려지고 기록됐다. 기차가 철로 위를 흘러가듯,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문장이 차창 밖 풍경처럼 머뭇거림 없이 상쾌하게 술술 넘어간다.

“여정은 단순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해 2박 3일간 기차를 타고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1박 후 출발해 4박 5일간 기차를 타고 이르쿠츠크에 도착한다. 다음 연결편을 타기 위해 2박 한다. 이르쿠츠크를 출발해 2박 3일간 몽골 울란바토르를 거쳐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다. 다시 1박 후 베이징을 출발해 밤 기차로 단둥 압록강 철교 앞에 도착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탑승하는 한국 여행객은 대체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서유럽 대도시에서 비행기로 돌아오는 경로를 택한다. 저자는 “아주 먼 곳에서 내가 사는 곳까지 육로를 통해 돌아오는 기분이 궁금했다”며 서유럽으로 날아가 동쪽으로 달리는 기차에 올랐다.

감상에 젖은 문장이 없어 읽는 맛이 깔끔하다. 열차 안에서 15일간 마주한 자신과 주변의 움직임을 부풀림이나 군더더기 없이 적고 그렸다. 억양에 꾸밈이 없는 친구와 조금 떨어져 앉아서 이따금 대화하며 기차를 타고 가는 기분이 든다.

“식당 칸에 혼자 앉아 있던 여자는 객실로 돌아갔다. 그 자리에 한 노부부가 앉더니 혼자 여행하는 노인이 합석했다. 내 선배 세대에게 장거리 기차란, 같은 방향을 달리는 낯선 이를 만나 친구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철저하게 혼자서 창밖 풍경의 세세한 변화를 느끼는 여행을 좋아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나긋한 영국 악센트로 대화를 나누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도 좋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책의향기#파리발 서울행 특급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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