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추락 아베 노골적 추진… “유사시 北 선제공격할 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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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日 ‘적기지 공격능력 보유’ 위험한 논쟁


“북한에 일본 미사일이 떨어질 수도 있다.”

‘일본이 적(敵) 기지 공격 능력을 보유하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이 미치느냐’는 질문에 대한 김대영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의 답변이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이 일본을 공격할 조짐을 보이면 일본이 토마호크 등 미사일로 북한을 선제공격하거나 자위대 특수부대가 상륙해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지금까지 상상하지 않았던 상황을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올 수 있는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 논란이 일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집권 자민당은 ‘북한, 중국, 러시아 등의 안보 위협이 커지고 있어 군사력 강화가 불가피하다’는 이유를 들어 적 기지 공격 능력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야권은 평화헌법 9조에 따른 ‘전수방위’(專守防衛·공격을 받았을 때만 방어 차원에서 반격)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맞선다. 여론조사에서도 찬성과 반대가 팽팽히 맞서 상당 기간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시기의 문제일 뿐 결국 일본이 적 기지 공격 능력을 보유할 것이란 관측도 많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012년 재집권 후 줄곧 “집단 자위권 행사 및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2015년에는 집단 자위권을 용인하는 안보관련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이끌어냈다. 아베 총리의 임기가 내년 9월에 끝나는 만큼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자신의 치적으로 삼기 위해서라도 이 안을 밀어붙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 ‘이지스 어쇼어’ 철회 후 논의 본격화

적 기지 공격 능력 논란은 지난달 일본이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 ‘이지스 어쇼어’ 도입을 철회하면서 불거졌다. 2011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후 북한이 자주 동해 방향으로 미사일을 발사하자 위협을 느낀 일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출범한 2017년 이지스 어쇼어 도입을 발표했다. 군사대국을 꿈꾸는 아베 총리, 북한 미사일을 막아야 한다는 일본 보수파의 요구, 무기 판매에 ‘올인’한 트럼프 행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배치 후보지로 거론된 아키타현, 야마구치현 주민이 격렬히 반대했다. 두 곳에는 육상자위대 훈련장이 있다. 주민들은 “이지스 어쇼어를 도입하면 우리가 전쟁 발발 시 최우선 공격 목표가 된다”고 성토했다. 레이더 전자파의 안전성 논란, 최소 수조 원이 필요한 막대한 사업비 등도 문제였다.

결국 지난달 15일 고노 다로(河野太郞) 방위상이 “비용, 시기, 기술 문제 등을 고려해 이지스 어쇼어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사흘 뒤 아베 총리는 새 안전보장 전략을 논의하고 싶다며 적 기지 공격 능력을 의제에 올렸다. 그는 취재진이 ‘적 기지 공격 능력도 포함되느냐’고 묻자 “상대방 (공격) 능력이 올라가면 이대로는 안 된다”며 도입을 논의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달 8일 의회에 출석한 고노 방위상 역시 “여러 선택지를 논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가세했다.

최근 지지율 급락에 고심하는 아베 총리가 논란이 불가피한 이 의제를 일부러 들고 나왔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도쿄 올림픽 연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부실 대응, 잇따른 측근 비리 등에 쏠린 여론의 관심을 분산시킨 후 핵심 지지층인 보수 유권자를 결집해 정국 장악력을 회복하려는 시도라는 의미다.

○ 日 보수파의 오랜 염원

적 기지 공격 능력의 핵심은 이미 발사된 미사일을 막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미사일을 쏘기 전 선제적으로 파괴하는 데 있다. 먼저 파괴하면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는 데 실패했을 때 자국민과 영토에 피해가 생길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 비용도 싸고 여론 반발도 적다.


교전권 및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 9조를 고치는 개헌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내 온 아베 총리에게도 이지스 어쇼어보다 나은 선택이다. 후행적 성격이 강한 미사일 방어체계가 아니라 선제 행동이 핵심인 적 기지 공격 능력이야말로 전쟁 가능한 ‘보통 국가’에 한발 더 다가가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50년대부터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가 위헌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적 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자위의 범위에 포함되며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다만 미국의 일본 방어 의무를 규정한 미일 안전보장조약 등을 감안해 선제공격용 무기는 보유하지 않았다.

64년 전인 1956년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당시 총리는 “공격을 당하면 앉아서 자멸을 기다리는 게 헌법 취지라고 생각할 수 없다. 다른 수단이 없으면 (적 기지 공격이) 자위의 범위에 포함된다”며 적 기지 공격 능력의 운을 뗐다. 이후 내각 또한 비슷한 태도를 고수했다. 아베 정권만의 독자 행동이 아닌 일본 보수파의 오랜 염원이라는 의미다.

자민당은 이미 지난달 30일 ‘미사일 방위에 관한 검토팀’을 출범시켰다. 이지스 어쇼어 도입 당시 방위상이었고, 한때 일본의 핵무기 도입까지 거론한 적이 있는 초강경파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자민당 안전보장조사회장이 이 팀을 관장한다. 그는 이달 중 행정부를 위한 공식 제언을 내놓기로 했다.

○ 애매모호한 기준이 논란 더 키워

적 기지 보유 능력 논란을 증폭시키는 것은 그 기준의 애매모호함이다. 무엇보다 ‘자기 방어가 불가피한 상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를 놓고 갖가지 주장이 속출한다. 아사히신문은 “기술이 발전하고 공격도 다양화하고 있다. 어떤 상황을 적이 무력 공격에 착수했다고 볼지 명확히 정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근 ‘포스트 아베’로 급부상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은 2003년 방위청 장관(현 방위상) 시절 ‘상대방이 미사일에 연료를 주입하는 준비 행위를 시작할 때’를 무력 공격 착수로 본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하지만 연료 주입 외에도 다양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준비 행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노로타 호세이(野呂田芳成) 전 방위청 장관은 “현실적으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도 적국이 무력 공격에 착수하면 자위권을 발동해 적 기지를 공격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무력 공격 착수의 기준을 어떻게 정의할지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유엔 헌장 51조는 ‘회원국에 무력 공격이 발생했을 때, 안보리가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개별적 혹은 집단적 자위라는 고유 권리가 침해받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즉, 선제공격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아베 정권은 일단 “적 기지 공격 능력이 선제공격과 다르다”는 점을 홍보하는 데 애쓰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 정권이 전수방위 위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적 기지 공격 능력’의 명칭을 ‘적 기지 반격 능력’ ‘스탠드오프 방위’ ‘자위 반격 능력’ 등으로 순화하는 일종의 우회로를 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적 기지 공격과 ‘선제’를 떼어 놓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도 상당하다. 마이니치신문은 15일 “(선제공격과 구분하기 위해) 실제 어디까지가 ‘공격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필요 최소한의 조치’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 일본 여론은 팽팽… 주변국은 강력 반발

요미우리신문이 3∼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적 기지 공격 능력에 대한 찬성 의견은 43%, 반대는 49%였다. 국민 여론은 찬반이 비슷한 것이다. 북―미 비핵화 협상 교착, 중국의 군사력 강화 등으로 최근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면서 ‘상대 공격을 막는 억지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일본 내에서 점차 커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자민당과 연립 여당 공명당의 의견도 엇갈린다. 자민당은 보유 찬성 여론이 많고 공명당은 유보적인 태도다. 최근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가 “무력 공격을 미연에 방지하는 외교적 대응에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고 발언하자 일본 언론은 적 기지 공격을 에둘러 반대한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주변국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24일 “전수방위 원칙을 충실히 지키라”고 일갈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달 4일 “일본의 무분별한 군국화는 섶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어리석은 자멸 행위”라고 가세했다. 아사히신문은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가 북한 중국 러시아 등의 반발을 불러 오히려 일본의 안보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 北·中 빌미로 핵무장론까지 제기

일부 극우 정치인은 아예 핵무장론을 제기한다. 2016년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당시 방위상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핵무기를 보유할 길이 원천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혀 큰 파문을 일으켰다. 도쿄도지사, 극우 정당 일본유신회 대표를 지냈던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아직도 공개 석상에서 “핵무장을 통해 나라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 “핵이 없는 나라는 외교력이 약하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핵연료 플루토늄을 발전용으로 보유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단기간에 핵무기를 만들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해외 주둔 미군의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국과 일본이 스스로 방어를 해야 할 것”이라는 식으로 압박하고 있고, 북한과 중국의 위협론도 고조되고 있어 일본의 핵무장이 마냥 불가능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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