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머리숱 줄고 주름이 늘어도 괜찮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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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나이들 줄 알았더니/제나 매카시 지음·김하현 옮김/344쪽·1만6000원·현암사

언제부턴가 사진 찍을 때 조명, 각도 등 고려할 게 많아진다면 중년이 됐다는 신호다. 작가인 저자는 10년도 전에 찍은 사진을 고수하며 새 프로필 사진을 찍지 않으려 버틴다. 다시는 그 정도로 예쁜(=젊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 코리아
언제부턴가 사진 찍을 때 조명, 각도 등 고려할 게 많아진다면 중년이 됐다는 신호다. 작가인 저자는 10년도 전에 찍은 사진을 고수하며 새 프로필 사진을 찍지 않으려 버틴다. 다시는 그 정도로 예쁜(=젊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 코리아
잔뜩 꾸미고서 ‘나 오늘 꽤 괜찮은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 사진을 찍어준다. 찍은 사진을 보자마자 “와, 네가 사진 찍는 바로 그 순간에 내 앞에 뛰어 들어온 저 늙은 여자는 누구…”라고 말하다 당황하고 만다. 세상에! 삭제, 삭제, 삭제.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삭제한다. 거울과 사진 속에 보이는 스스로의 모습이 낯설고 당황스러운 것. 중년의 시작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지만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중년기란 삶의 큰 전환이다. 머리숱이 줄고, 몸은 예전 같지 않은데 아이들이 훌쩍 자라 있다. 다들 우아하고 자연스럽게, 편안히 나이 드는 것 같지만 40대 이후 중년의 삶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사실 사춘기 시절의 방황 못지않은 혼란, 의문, 당혹, 낯섦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은 미국의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저자가 마흔 다섯에 접어들면서 직접 겪은 에피소드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신체적, 환경적 변화와 함께 젊음이 추앙받는 세태, 그를 이용한 산업 등도 위트 넘치는 입담으로 꼬집는다.

자신이 중년이라는 사실을 처음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저자 역시 줄곧 ‘우리 엄마가 중년이지, 난 아니지’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묘사할 땐 무심코 ‘어려. 우리 나이 정도야’라고 말한다. 객관적으로 ‘어리지 않은 나이’이자 중년이라는 사실을 자꾸 망각해서다.

노화를 의식하는 단계에 이르면 좀 더 어려 보이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안티에이징 제품에 쓴 돈을 다 합치면 새로 나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레인지로버를 한 대 뽑고도 남겠는데 별 효과가 없다. 정수리는 쥐가 파먹어서 둥지를 튼 것처럼 빈다. 결국 부분 가발을 착용하는데 세면대에 걸린 가발을 보고 남편이 기겁 하며 소리친다. “죽은 사막쥐인 줄 알았잖아!”

이뿐인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가 선택의 기준이었던 구두는 무조건 처음 신었을 때부터 편한 것으로 바뀌고 몸의 모든 것이, 머리부터 무릎 발까지 무너져 내리는 데다 아이들은 ‘엄마 입에서 똥냄새 난다’고 말할 정도로 자라 있다. 그렇다면 중년은, 불행한가?

그렇지 않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생일케이크에 50개의 초가 꽂혀 있을 때쯤에는 삶이 우리에게 아무리 뜨끈하고 고약하고 구리고 구린 원숭이똥을 던지더라도 대부분 이렇게 받아칠 수 있다. “그래? 하지만 더 나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는데 뭐.”

우아하게 나이 드는 방법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나이 든다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삶이란 부서지기 쉬운 선물에 감사할 줄 알고 인생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며, 과거의 실수를 잊고 넘기는 법도 배우니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웃을 여유가 생긴다. 스스로를 꼴사납고 우악스럽게 묘사하는 데 개의치 않는 저자의 태도도 어쩌면 그런 관조와 여유에서 나오는지 모른다. 정신없이 수다스럽고, 지치지 않고 웃기는 글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우아하게 나이들 줄 알았더니#제나 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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