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이 아니다, BTS-팝이다!

  • 주간동아
  • 입력 2018년 9월 16일 0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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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빌보드 석권 이후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다음 ‘고지’는?


[사진 제공 · 빅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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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중음악 산업의 가장 권위 있는 지표, 빌보드. 올해 방탄소년단(BTS)이 두 번 연속 ‘빌보드 200’ 차트 정상에 올랐다. 빌보드 200은 미국 내 앨범 판매량을 집계하는 차트로, 비(非)영어권 아티스트가 자국어로 두 번 1위를 한 것은 유례없는 성과다. 특히 한국 전통음악 요소를 차용한 최근 히트곡 ‘IDOL’은 마치 “아시아인은 여기까지 올 수 없을 줄 알았어?”라고 으스대는 듯한데도 불구하고.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다음 목표로 그래미 어워드(그래미) 수상을 꼽는 사람이 많은 가운데, 그래미 측에서도 이들에게 관심의 제스처를 보냈다. 9월 12일 그래미 뮤지엄이 방탄소년단을 초청해 특별 이벤트 ‘방탄소년단과 대화(A Conversation With BTS)’를 개최한 것이다.

그래미는 백인 남성에 초점을 두는 보수적인 성향의 시상식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변화의 모습이 감지된다. 그래미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인종주의적 성향에 비판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그리고 불과 며칠 뒤 소수자 연대의 메시지를 담은 ‘Not Today’ 뮤직비디오를 발표한 방탄소년단은 미국 음악 산업이 찾고 있던 아티스트였다.

같은 해 빌보드 뮤직 어워드 수상을 시작으로 방탄소년단은 아찔할 정도로 매번 기록을 경신하며 미국시장을 파죽지세로 공략했다. 최근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 ‘서치’ 등 미국 내 아시아인의 삶을 그린 영화들이 히트하면서 아시아인의 인종적 가시성이 미국 내에서 큰 흐름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추세는 미국 주류시장에 방탄소년단을 소개하는 데도 긍정적인 기류로 작용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빅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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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매체들도 방탄소년단의 이례적인 성취를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케이팝(K-pop) 아티스트가 이렇게까지 세계에서 성공할 줄은 몰랐다’는 경이가 있다. 동아시아 대중음악이 북미시장에서 설득력을 가지려면 여성 아티스트가 유리하다는 게 2000년대까지 통념이었다. 이미 2000년 전후로 아시아권과 유럽 일부 지역에서 한류가 발생하면서 남성 아티스트들이 성취를 내고 있었지만, 북미는 전혀 다른 ‘고지’였다. 이는 대개 영미권의 ‘정통’을 제3세계에서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됐다. 어차피 미국인과 본질적인 부분에서 겨룰 수 없다면, 서구인에게 동양 남성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동양 여성이 더 승산 있다는 인식이 흔했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 여성가수들이 북미시장 진출을 야심차게 시도한 사례가 적잖다.

‘미국 팝과는 다른 것’

[사진 제공 · 빅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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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통념에 균열이 간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다. 해외에서 케이팝을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는 유튜브라는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해외 팬덤이 대거 확산되고 보니, 정말로 인기 있는 것은 보이그룹들이었다. 소녀시대, 원더걸스, 투애니원 등 걸그룹도 인기가 없지 않았지만, 이들은 매력적인 ‘친구’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해외 팬덤의 주류가 집중한 대상은 빅뱅, B.A.P, EXO, 2PM 등이었다. 이는 결국 케이팝이 미국 팝과 ‘겨룰’ 필요가 없음을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이민 가정의 여성 자녀와 성소수자가 중심이 된 이들의 관심은 미국 팝을 능가하는 것이 아닌, ‘미국 팝과는 다른 것’에 있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지화 전략의 모든 세부 사항을 폐기했다. 현지어에 능숙해 교두보 역할을 하는 외국 출신 멤버, 현지어 노래 취입, 현지인이 이해하기 쉬운 콘텐츠와 심지어 발음하기 쉬운 이름 등. 방탄소년단은 모든 것이 반대였다. 멤버 전원이 국내 출신이고, 한국어로 노래하며, 각자 출신 지역의 색을 강조하거나 교육 시스템 또는 주거환경 등 국내 특수한 맥락도 가사에 넣었다. 과거 현지화 전략이 천동설이라면, 방탄소년단의 전략은 지동설로 느껴질 정도다. 해외 팬들에게 더 유효한 어필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BTS만 좋아해”

[사진 제공 · 빅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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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하나가 콘텐츠의 서사성이다. 연작 음반이란 포맷, 자연인인 각 멤버의 생애주기를 바탕으로 한 주제 선정과 이에 따른 콘셉트 앨범, 빌보드 뮤직 어워드 수상 연설같이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시 서사 안으로 끌어들이는 수법 등이 모두 동원된다. 지금 이들이 세일즈하는 것은 음반이나 투어보다 차라리 방탄소년단이라는 장편 드라마에 가깝다. 서사성 강한 콘텐츠가 해외 팬들에게 어필한다는 것은 해외에서 더 큰 반응을 얻고 있는 최근의 드림캐쳐나 이달의 소녀에게서도 엿볼 수 있는 점이다. 신곡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에피소드를 받아들고 복선을 해석해가는 재미는, 국내 매체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해외 팬들도 전혀 소외되지 않는 소비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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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팬들에게는 방송과 연예 뉴스의 지배력이 높다. 케이팝 아이돌은 신곡 발표, 음악방송과 예능프로그램 출연, 연예뉴스 보도, 기타 행사 등 다양한 경로로 팬들을 만난다. 그에 비해 해외 팬들에게는 트위터, 유튜브, 브이라이브(V LIVE) 등 뉴미디어가 더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뉴미디어는 방탄소년단이라는 풍성한 콘텐츠를 더 명쾌하게 제시해주는 역할도 한다. 공식 음원과 뮤직비디오로 감상이 집중되고, 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으로 보완한다. 콘텐츠는 대부분 소속사와 멤버들이 직접 관여하는 공식적인 것들이라 통제력이 강하고, 감상자로서는 집중도가 높다. 특히 물리적으로 원거리에 있는 해외 팬들에게는 이런 방식이 더 유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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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들려주는 진솔한 자기 고백과 진정성은 케이팝 팬덤이 늘 목말라 하는 부분이었다. 케이팝의 완벽한 조형미에 열광하면서도 그것이 ‘인공물’ 또는 ‘가짜’라고 여기는 인식은 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었다. 국내 팬들은 이런 찜찜함을 극복할 수 있다. 스타를 가까이에서 접하며 실재감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 팬은 사정이 다르다. 이들에게 방탄소년단은 조형미와 진정성을 함께 갖춘 솔루션으로 다가왔다. 그 결과는 해외 팬덤의 구조 변화로 여실히 드러난다. 여러 아티스트를 동시에 좋아하는 게 일반적이었으나, 이제는 방탄소년단만 좋아하는 팬과 나머지로 재편되고 있다. 케이팝 팬덤에서 방탄소년단이라는 해답을 찾아낸 사람이라면, 다른 아티스트를 좋아하면서 느끼는 찜찜함을 이미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은 케이팝이 아니라 BTS-POP’이라는 주장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동안 세계 케이팝 지도에서 한국은 일종의 종주국 구실을 했다. 해외에서 더 인기 있는 아티스트가 더러 있었지만, 그 정도에 한계가 있었다. 해외 팬들도 국내에서 인기도를 의식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에서 인기가 없는 탓에 커리어가 지속되지 못한다거나, 국내 팬들로부터 ‘눈치 없다’는 식의 핀잔을 받는 등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해외 팬덤은 꾸준히 독자적인 취향집단으로 진화해왔다. 최근에는 드림캐쳐, 스트레이 키즈, 이달의 소녀, 카드 등 해외에서 더 뜨거운 아티스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방탄소년단 이후로 더 가속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선 별 관심 없던 커리어 초반부터 방탄소년단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온 것이 해외 팬덤이고, 그것이 폭발력을 얻어 북미시장에서 큰 성과를 낸 뒤 국내로 ‘역수입’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케이팝이란 산업에서 한국시장의 숫자들은 그 중요성이 낮아질 것이다. 당장은 국내에서 인지도와 별개로 해외에서 세일즈되는 케이팝 아티스트가 늘어날 테다. 궁극적으로는 국내시장과 무관한, 말하자면 ‘탈K’한 케이팝 아티스트의 등장을 기대할 만하다.

美 음악계, 아미의 자발적 행동력에 ‘경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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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에서, 한국은 여전히 케이팝의 문화적 헤게모니다. 방탄소년단과 함께 가장 많이 불리는 이름, 이들의 팬덤 ‘아미(Army)’가 이를 보여준다. 방탄소년단이 하나의 드라마라면, 아미는 ‘참여하는 문화’다. 빌보드 입성 이후 화제가 되면서 해외에서는 아미의 활동에 첨예한 관심을 보인다. ‘BTS를 100% 즐기려면 아미의 일원이 돼 춤과 노래를 따라 하고 구호도 외치고 온라인 투표도 해보라’는 식이다. 말하자면 방탄소년단이 일종의 체험형 콘텐츠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한국식 팬 문화다. 미국 팝이 경험해보지 못한 문화다. 영미권에서는 어떤 아티스트의 팬 집단 이름이 언중(言中)에 의해 자연스럽게 붙는다. 저스틴 비버의 팬덤인 ‘빌리버’, 원디렉션의 팬덤인 ‘디렉셔너’ 등이 그렇다. 반면 케이팝에서는 소속사와 아티스트에 의해 명명되는 것이 팬덤이다. 이들은 같은 아티스트를 좋아하고 비슷한 성향을 가진 집단이 아니다. ‘이름이 불려진’ 존재, 아티스트와 ‘인연’이란 감각을 느끼는 존재다. 이는 영미권 팝과 구별되는 케이팝 문화 특유의 감성이기도 하다. 아티스트의 성공을 염원해 자신을 헌신하게 하는 원동력이며, 방대한 인원의 집단행동으로 구체화된다.

[사진 제공 · 빅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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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나 뮤직비디오의 재생 횟수, 이들이 언급되는 모든 투표에 나서는 것은 기본이다. 아미는 미국 라디오 방송국에 집단적으로 신청곡을 보내거나 미국 연예계의 인플루언서들에게 방탄소년단을 홍보하는 등 다방면에서 이들을 그야말로 ‘서포트’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2012)과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싸이는 일반 대중 사이에서 노래가 화제를 모아 히트했기에 운도 크게 작용했다. 반면 팬덤 힘으로 차트를 치고 올라가는 방탄소년단은 사람의 노력으로 이룬 성공이기에,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말하듯 ‘모델로서도 유효해진다’. 미국 음악 산업계가 아미의 자발적인 행동력에 경탄하고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팬덤을 향한 시선은 국내에서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팬덤에 관한 연구논문 상당수는 팬들이 아티스트의 홍보를 수행하는 데 초점을 둔다. 달리 말해 소속사의 자원과 노동력이 들어갈 업무를 팬들이 ‘자발적으로’ 맡음으로써 발생하는 경제효과에 주목하는 것이다. 비슷한 시각이 미국 음악 산업계에도 있다. 가볍게는 SNS에서 별 뜻 없이 아미를 호명하며 관심을 유도하는 경우가 있고, 그리 의미 없는 인기투표를 만들어 아미의 클릭수를 챙기기도 한다. 심지어 연예매체나 음악 기자가 자신들이 어떤 상 후보에 오르자 아미에게 투표를 부탁하는 사례마저 있다.

물론 관계자는 대부분 아미의 힘이나, 아미와 방탄소년단의 각별한 유대에 아낌없는 존중을 표한다. 그러나 아미의 경제적 가치를 이용하려는 이들의 존재는, 미국 음악 산업과 한국식 팬덤 문화 사이를 마냥 순수하게 바라볼 수만은 없게 한다. 첫 만남의 핑크빛 기류 속에서 어떤 역학이 발생하게 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역풍의 우려도 있다. 국내에서 아이돌 팬들은 오래도록 부정적 시선을 받아왔다. ‘어린 여성의 취향’에 대한 폄훼는 정도의 차이는 있되 많은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아직은 긍정의 시선이 지배적이지만, 소녀들의 집단행동이라는 현상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이들은 언제든지 출현할 수 있다. 이미 미국 유력지에서 ‘FAKE LOVE’ 무대를 리뷰하며 “대놓고 가짜 사랑이라고 노래하는데도 좋다고 환호하는 팬들”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은 ‘Love Yourself(자신을 사랑하라)’ 캠페인을 펼치기도 하고, 팬들도 이에 화답해 아미의 ‘화력’을 자선모금 등 선행에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최근 방탄소년단의 공항 입국장에서는 팬들이 질서 유지와 아티스트 보호를 위해 끈으로 안전선을 만드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이처럼 아이돌 그룹과 팬덤에 대해 인식 개선이 이뤄질 만한 사례도 쌓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뜨거운 팬덤은 뜨거운 역풍을 맞기도 쉽다. 방탄소년단과 아미가 이 기류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아나갈지는 조심스럽게 지켜볼 일이다.

건강하고 즐거운 팬덤 문화를 향해

8월 26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BTS WORLD TOUR ‘Love Yourself’ 서울 공연. [사진 제공 · 빅히트]
8월 26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BTS WORLD TOUR ‘Love Yourself’ 서울 공연. [사진 제공 · 빅히트]
앨범 ‘Love Yourself 結 ‘Answer’’는 빌보드 200 1위에서 8위로, 타이틀곡 ‘IDOL’은 빌보드 핫100 11위에서 81위로 내려섰다. 앨범이 곡보다 선전하는 점이나, 발매 초기 집중되는 점은 대표적인 ‘팬덤 주도형’ 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의 힘이 팬덤이라면, 그 한계도 팬덤의 크기인 셈이다. 실망하거나 얕볼 일은 전혀 아니다. 아직 미국 주류시장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안착하지는 못했다는 의미일 뿐이며, 이는 자연히 방탄소년단과 아미가 바라보고 있을 다음 고지일 것이다.

국내외 언론이 보이는 방탄소년단에 대한 관심은 역시 성적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이들이 세우는 금자탑과 성공 원인, 경제적 가치 같은 것들이다. 유감이라면 유감이지만, 그것이 미디어의 생리다. 우려되는 점은 이러한 여론이 팬덤의 목표 지향성을 더 자극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특히 국내 매체의 무관심에 오래 시달린 국내 팬들은 보상심리를 크게 느낄 법하다. 또한 이와 동시에 국내에서 활동 시간이 적은 데 대한 결핍감과 이로 인한 피로를 호소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성적표와 숫자들 뒤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 주제는, 어떻게 건강하고 즐거운 팬덤 문화를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노력과 헌신을 요구하는 한국식 팬덤 문화를 출발점으로 이만큼이나 멀리 왔을 때, 방탄소년단이 케이팝에 가져온 것과 같은 혁신을 팬덤 문화에서도 목격하게 될까. 그 해답 역시 방탄소년단과 아미는 함께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tres.mimyo@gmail.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56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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