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Topic]현대자동차는 왜 ‘국민 밉상’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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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9월 7일 09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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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일 부산 남구에서 대형 트레일러와 부딪친 싼타페 차량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찌그러졌다. 부산소방안전본부 제공
8월 2일 부산 남구에서 대형 트레일러와 부딪친 싼타페 차량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찌그러졌다. 부산소방안전본부 제공
운전자에게 ‘급발진’은 유령 같은 존재다. 차종과 상관없이 한 해에도 몇 차례씩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한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급발진 의심 사고는 국산차나 수입차 가리지 않고, 또한 크기나 연식에 관계없이 고루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체도 명확한 인과관계도 없어 급발진 의심 사고를 접하는 운전자는 언제나 ‘다음 차례는 나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운전대를 잡는다. 이 때문에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가 났을 때 운전자가 가장 먼저 의심하는 것도 급발진이다.

지난 5월 23일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서 한 운전자가 몰던 싼타페 차량이 정지 신호를 받아 대기하던 앞차를 갑자기 들이받고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다 가까스로 멈추는 사고가 있었다. 많은 사람이 급발진을 의심했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사고 원인은 운전자의 조작 실수였다. 8월 2일 부산 남구 감만동의 한 주유소 앞 도로에서는 피서를 가던 일가족 5명이 탄 싼타페 차량이 트레일러를 들이받아 4명이 숨졌다.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이 사고의 원인을 밝히려 감정을 진행 중이다.

두 사건 모두 사고 원인이 차체 결함이라고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운전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불신의 화살은 한 곳으로 향한다. 제조사인 현대자동차다.

해당 사건을 두고 19만 명이 가입한 네이버 카페 ‘싼타페 클럽 DM’에서는 “결국 회사는 잘못이 없다는 건가. 믿을 수 없다” “급발진은 왜 현대차에서만 일어나나” “사고가 나더라도 현대차가 (과실을) 인정하겠는가” 같은 반응이 주를 이룬다. 자신도 현대차를 타지만 언제 어디에서 급발진 사고가 날지 모르니 “급발진 발생 시 대처법을 공유하자”는 글도 심심찮게 보인다.

차량의 급발진 원인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규명된 적이 없다. 국토교통부, 교통안전공단, 한국소비자원 등이 급발진 원인을 밝히고자 여러 차례 조사에 착수했지만 차체의 결함을 밝혀내지 못했다.

지난해 8월 22일 오후 인천 송도 도심서킷에서 진행된 국산 쏘나타(왼쪽)와 미국산 쏘나타(오른쪽)의 충돌실험 장면. 현대자동차 제공
지난해 8월 22일 오후 인천 송도 도심서킷에서 진행된 국산 쏘나타(왼쪽)와 미국산 쏘나타(오른쪽)의 충돌실험 장면. 현대자동차 제공

국토교통부 자동차정책과 관계자는 “급발진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소비자가 지속해서 급발진이 의심된다고 신고하면 어떤 사안인지 파악하고, 필요하면 조사에 착수한다. 과거에도 전문가, 시민단체 등과 급발진이 발생할 만한 상황을 만들고자 수차례 재연 실험을 했으나 특별히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문제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급발진은 현대차뿐 아니라 수입 자동차에서도 발생하며 어떤 차종에 국한해서 발생하지 않는다. 국산 자동차는 판매 대수가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신고 건수도 많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현대차를 타는 운전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현대차는 급발진 논란 외에도 끊임없이 내수 차별 논란의 중심에 있다. 싼타페를 모는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요즘 급발진 의심 사고가 많이 보도돼 차를 탈 때 조금 두렵기는 하지만 주변 지인의 사고가 아니라 실제로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게도 언젠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시동을 걸 때마다 확인 또 확인한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내수 차별 의혹을 불식하고자 지난해 열린 쏘나타 30주년 기념 자동차 영화시사회에서 쏘나타 국내 생산 모델과 미국 생산 모델이 서로 충돌하는 테스트를 진행하고 동일한 안전성을 갖췄음을 검증하기도 했다.

그래도 소비자 반응을 돌리는 데에는 역부족이다. 쏘나타를 타는 30대 직장인 이모 씨는 “현대차에 대해선 내수용과 수출용 차이가 크다는 인식이 있다. 요즘 쉐보레가 잘 팔리는 데는 해외에서 만들어서 들여왔기에 내수 차별이 없을 거라는 인식도 한몫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현대차 측은 나라마다 규제가 달라 법에 맞추다 보니 안에 들어가는 부품 등이 달라졌다고 말은 하지만 구매자 처지에서는 믿기 어렵고 돈이 없어 현대차를 사기는 하지만 종종 ‘호구’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7월 26일, 현대차는 6월 20일 이전 생산한 아이오닉 하이브리드 차량에 대해 인젝터 교환 서비스를 진행하기로 했다. 최근 현대차 하이브리드 차량을 구입한 40대 사업가 최모 씨는 “해당 차종을 타다 보니 뉴스에 더 민감하다. 10년간 보증을 해주겠다고 해도 소비자 과실이 아닌 것을 소비자가 직접 입증해야 한다는 게 문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씨는 “리콜 절차도 대대적으로 홍보하지 않아 동호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들은 사람만 교체하는 실정이다. 그것도 동호회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적극적으로 항의하니 교체라도 해주게 된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 같은 소비자 반응에 대해 현대차도 할 말은 있다. 현대차 홍보팀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려 갖가지 노력을 한다. 지난해 쏘나타 충돌 시연도 했고, 공장을 보여드리기도 하고, 연구소장을 모셔놓고 대화 자리를 마련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자와 소통하고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만 익명성에 숨어 온라인으로 뭐라고 하는 사람들은 늘 있었다. 기업 차원에서 소비자와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데, ‘쇼 한다’ 한 마디면 끝나버리는 점은 아쉽다.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대차가 ‘밉상’ 이미지를 벗어나려면 소비자와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카미디어’ 장진택 기자의 충고다. “현대차는 그간 소통하지 않고 막혀 있던 회사다. 자사에 유리한 것만 알리려 하고 불리한 건 막아뒀지만 그렇게 해도 판매에 별 지장이 없던 사실상의 국내 자동차 판매 독점 회사였다. 국내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유리한 독점적 위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관용’이 필요하다. 실제로 많은 소비자는 현대차가 국내 자동차 문화 수준을 끌어올리기를 기대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자동차 산업을 키우는 문제에만 집중하다 보니 제도 면에서 판매자에게 유리하게 돼 있고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부분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수십 년간 독과점으로 운영하다 보니 소비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다.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운전자가 자동차 결함을 이유로 소송했을 때 보상을 받거나 이긴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의 피해의식이 누적됐고, 이것이 곧 불신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의 쏘나타 충돌 시연 당시 자문에 응하기도 한 그는 “현대차가 다양한 노력을 해도 소비자가 쉽게 믿지 않는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현대#현대자동차#급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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