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디캐프리오와 아카데미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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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최대 관심사는 작품상도 감독상도 아니고 영화 ‘레버넌트’에서 열연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남우주연상 수상 여부였다. 디캐프리오는 ‘너무 유명해지는 바람에 오히려 출연을 후회했다’는 ‘타이타닉’에서 연기한 게 19년 전이고 숱한 화제작에 출연했지만 남우주연상을 받지 못했다. 팬들은 시상식에 앞서 그의 수상 탈락을 기원하는 희한한 캠페인을 벌였다. 영화마다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디캐프리오의 모습을 그의 수상을 늦춰서라도 가능한 한 더 많이 보고 싶다는 애정 어린 마음에서였다.

▷레버넌트(revenant)는 라틴어 다시(re)와 오다(veno)에서 온 말로 몸은 무덤에 두고 돌아온 혼, 즉 유령을 뜻한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예술에서 주체는 현전하는 것도 아니고 현전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난해한 이론을 펼치면서 팬텀이 아닌 이 고풍스러운 단어를 사용했다. 영화 속 디캐프리오는 유령은 아니지만 죽음에서 돌아온 자다. 치명적 부상을 입고 무덤에 버려졌으나 살아 돌아와 복수하는 사냥꾼으로 등장한다.

▷사진작가 애니 리버비츠가 찍은 디캐프리오의 흑백 사진이 있다. 사진 속에서 디캐프리오는 죽어가는 백조의 긴 목을 자신의 목에 두른 채 안고 있다. 어릴 적 꿈이 해양생물학자였던 디캐프리오는 2000년 영화 ‘비치’를 찍으면서 환경주의자가 됐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레버넌트는 인간과 자연의 호흡을 그린 영화다. 그런데 영화를 촬영한 2015년은 역사상 가장 더운 해였다. 온난화로부터 우리의 아이들을 지키자”고 역설해 공감을 끌어냈다.

▷디캐프리오는 1996년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연 출연으로 일약 1990년대 청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됐다. 그러나 그는 아이돌이 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2002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갱스 오브 뉴욕’으로 호흡을 맞춘 이후 2013년 ‘위대한 개츠비’에 이르기까지 갱단두목 밀수꾼 증권브로커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팬들은 꽃미남 디캐프리오를 잃는 대신 시대를 넘어 기억될 한 배우를 얻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아카데미 시상식#레버넌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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