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車기술 경연장에 한국 썰매 도전장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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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두 선수 체형 맞춰 특별제작… 27일 유럽컵대회부터 출전
美-伊-英 車업체도 자국선수 지원

렌터카를 타고 포뮬러원(F1) 대회에 나가는 드라이버가 있다면 어떨까.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 사정이 딱 그랬다. 2013년까지도 유럽산 중고 썰매를 빌려 대회에 나가는 선수가 있었다. 봅슬레이 대표 출신 이아영 국제봅슬레이스켈리턴연맹(IBSF) 심판은 “썰매에 먼지가 잔뜩 낀 건 예삿일이고 곳곳에 테이프로 덧댄 흔적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 뒤로도 한국 대표팀은 주로 외국 선수들이 타던 B급 중고 제품을 사서 탔다. 그마저도 1억 원이 넘는 가격이었다. 2014 소치 겨울올림픽 때는 캐나다와 네덜란드에서 합작해 만든 제품을 썼다. 현재 대표팀 에이스 원윤종과 서영우는 라트비아 장인이 만든 썰매를 탄다.

이제 봅슬레이 썰매도 국산 시대가 열렸다. 한국 대표팀은 27일(현지 시간)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리는 IBSF 유럽컵부터 현대자동차에서 만든 썰매(사진)를 탄다. 원래 이 대회에는 국가대표 2진 선수들이 참가할 예정이었지만 실전 테스트를 해볼 수 있도록 원윤종과 서영우가 나서기로 했다. 현대차는 3차원(3D) 스캔 기술을 활용해 선수들의 체형을 측정하는 것부터 설계를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외국 선수들 체형에 맞춰 나온 썰매를 타다 보니 부상 위험에 시달려야 했다.

봅슬레이 썰매 제작에 나선 자동차 회사가 현대차가 처음은 아니다. 독일 메이커 BMW는 소치 올림픽 때 미국 대표팀을 지원했다. 미국은 이 대회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딴 반면 독일은 노(No) 메달에 그쳤다. 그러자 독일 대표팀에서 “우리는 똥차 타는데 BMW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만 지원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독일은 현재까지도 올림픽 봅슬레이에서 금메달을 가장 많이(10개) 딴 나라다.

이탈리아 브랜드 페라리와 영국 브랜드 매클래런도 각각 자국 대표팀을 지원한다. 이들은 첨단 자동차 기술을 활용해 공기 저항과 진동을 최소화하며 썰매를 점점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가 만든 썰매는 동체를 지면에 달라붙게 만드는 ‘다운 포스’를 이용해 코너를 빠르게 돌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BMW는 썰매 설계에 약 2400만 달러(약 287억7600만 원)를 썼다. 재미있는 건 BMW가 비용을 절감하겠다며 2009년 F1에서는 손을 뗐다는 점이다. 국제자동차연맹(FIA)에서 드라이버 기량 차이를 더 중시해 경주차 ‘스펙’을 제한하고 있는 것도 자동차 회사들이 썰매로 눈길을 돌리게 만드는 이유다.

F1 레이스에서는 엔진 못지않게 타이어도 중요하다.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타이어를 썼다간 경기를 망치기 십상이다. 봅슬레이에서는 러너(날)가 타이어 같은 역할을 한다. 한국 대표팀 이용 감독은 “독일은 온도에 따라 달리 쓰는 날 종류가 100가지가 넘는다. 자기들이 사용한 건 다른 나라에 팔지 않고 폐기 처분한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2018년까지 썰매를 지원하기로 했는데 여기에는 날을 제작하고 지원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봅슬레이#현대차#썰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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