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中, 외교부행사중 北대사 면전서 핵실험 공개비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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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4차 핵실험 이후/美-中-日 엇갈린 표정]中, 제재냐 포용이냐
통상 써왔던 ‘각국 냉정호소’ 문구, 이번 외교성명 발표땐 빠져
외신들 “北, 中겨냥 무력시위한 것”

《 북한의 4차 핵실험에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면종복배(面從腹背), 양봉음위(陽奉陰違)’의 북한에 배신감을 느끼지만 달랠 ‘당근’도, 휘두를 ‘채찍’도 없어 고민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공화 민주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받으며 그의 대북정책 브랜드인 ‘전략적 인내’를 버려야 할 처지에 놓였다. 군사대국화 정책에 순풍을 받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웃고 있다.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한 지 3개월가량이 지난 2013년 2월 북한은 3차 핵실험을 했다. 고위급 교류가 끊기는 등 북-중 관계는 긴 냉각기에 들어갔다.

기류 변화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나타났다. 지난해 9월 3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가 참석했다. 한 달 뒤 평양에서 개최된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당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류윈산(劉雲山)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참관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 ‘해빙 무드’가 만들어졌다. 중국의 태도 변화를 놓고 북한이 더이상 핵실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약을 받았기 때문(뉴욕타임스)이라는 분석도 잇따라 나왔다.

하지만 북한은 6일 4차 핵실험을 감행해 시 주석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9월과 2014년 6월 한국 방문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했다. 지난해 9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 긴장을 조성하거나 유엔 안보리 결의에 위배되는 어떤 행동도 반대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처럼 시 주석이 여러 차례 ‘북핵 불가’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핵실험으로 답했다.

뉴질랜드 웰링턴 빅토리아대의 보 즈웨 중국연구센터장은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실험은 한마디로 중국을 향한 시위”라며 “‘우리(북한)가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다. 중국 허락 따위는 필요 없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6일 새해 첫 지방 시찰로 충칭(重慶)을 방문하고 있던 시 주석은 북한의 핵실험 소식에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북-중 관계가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관계라는 점을 잘 아는 김정은이 시 주석의 경고를 무시하고 제 갈 길을 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은 북한의 조치에 분개하고 있다. 6일 외교부 성명에서 과거 3차례 핵실험 당시 항상 사용했던 ‘각국의 냉정과 절제를 호소한다’는 문구도 처음으로 뺐다. 북한에 대한 제재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이날 저녁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열린 외교부 신년 초대회에서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의 면전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반대를 고려하지 않고 다시 핵실험을 진행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북한을 지나치게 압박하면 ‘아시아 재균형’ 기조 아래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미국의 존재감을 높여주고 일본에는 재무장과 군사력 강화의 명분을 줄 수도 있다는 게 시 주석의 고민이다. 더욱이 중국 증시가 대폭락해 시 주석이 당장 북핵 문제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형편이다.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가 “이번 사태는 미국이 한반도에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배치할 명분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석유 공급 중단 등 극단적 조치로 북한이 혼란에 빠지거나 정권이 붕괴되는 것도 중국으로서는 바라지 않는 일이다.

▼ 北에 덜미잡힌 오바마 ▼

美, 대화-제재 병행정책 갈림길

“전략적 인내 사망선고” 목소리… 임기 마지막해 대안찾기 힘들어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하겠다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갈림길에 놓였다. 워싱턴에선 이번 사태로 이 정책이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백악관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6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의 도발로 우리의 대북정책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다만 우리의 대북정책으로 북한이 어느 때보다 고립되고 국제 사회의 연대는 강화된 것 역시 사실”이라며 애써 의미를 부여했다.

문제는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오바마 대통령이 마땅한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모든 외교 역량을 ‘이슬람국가(IS)’ 격퇴와 이란과의 핵협상 마무리에 쏟아오다 이제 와서 자신의 브랜드인 ‘전략적 인내’를 포기하고 새 대북정책을 구상하기 어렵다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을 움직여주길 기대했지만 이번 핵실험에서 보듯 실패했다”며 “조지 W 부시 정권에서 북핵 이슈는 외교 현안의 최우선 순위였지만 이번 정부에선 5, 6위 정도에 머물렀다”고 분석했다.

미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스탠퍼드대 한국학연구소 부소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 와서 오바마 대통령이 군사적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북한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유엔 등 국제 사회의 압박을 강화하면서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게 현실적 대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워싱턴 한반도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강경한 대북정책 드라이브를 걸어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리처드 부시 브루킹스연구소 동북아 담당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겠다는 의도를 명백히 드러낸 만큼 장기적으로 북한을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미국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는 “이제는 행동할 때이다. 북한의 돈줄을 죄고 금융 거래를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 우경화 탄력받는 아베 ▼

日, 군사대국화 전략 가속

野 안보법제 무효투쟁 무력화… ‘위안부 합의’ 우익 비판도 묻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응을 포함해 일본과 미국이 국제사회를 주도해 나가는 데 일치했다. 국제사회가 일치해 대응하도록 노력하고 우리나라의 독자적 조치를 포함해 의연하고 단호하게 대응하겠다.”

7일 오전 10시 1분 개회한 일본 참의원(상원) 본회의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북한 핵실험과 관련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이날 오전 7시 37분부터 20분간 통화한 내용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의원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일본 의회는 여야가 함께 북한 핵실험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8일 채택한다. 아베 총리로서는 기막힌 타이밍에 터져준 북한의 4차 핵실험 발표였다.

민주당 등 야당은 4일 개회한 정기국회에서 안보법제 무효화 투쟁을 벼르고 있었다. 7월 참의원 선거에서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해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아베 총리의 집념에 브레이크를 건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 발표로 야당의 반대 목소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됐다. 반대로 아베 총리의 군사대국화 전략은 정당성을 확보하게 됐다.

아베 총리는 이번 사태를 기회로 한국과의 방위 협력을 가속화하는 한편 중국에서 한국을 떼어내려는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의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일본 관방부장관도 이날 “(한국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조기 체결을 포함해 안전보장 협력을 한층 전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의 도발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한 우익들의 비판 여론이 묻히게 된 점도 아베 총리에게는 가외 소득이다. 하기우다 부장관은 위안부 소녀상 철거가 10억 엔(약 101억 원) 출연의 전제조건인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국 정부를 의식한 듯 “그런 인식은 없다”고 공식 부인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조숭호 기자
#북한#핵#북핵#중국#미국#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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