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동성애 천국’서 ‘동성애 혐오국’으로…탈바꿈한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일 15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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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왼쪽)와 헤파이스티온의 동상
알렉산드로스(왼쪽)와 헤파이스티온의 동상
고대 그리스 관련 기록을 보면 동성애 코드가 무수히 발견된다. 특히 멘토 역할을 하는 성인 남성과 멘티 위치에 있는 미소년 사이에 동성애 관계에 대한 묘사나 암시가 무수히 등장한다.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소크라테스의 ‘향연’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찬미가 발견된다. ‘향연’에서 아테네 최고의 꽃미남으로 묘사된 소크라테스의 제자 알키비아데스는 동성애를 통해 여러 명의 정치적 후견인을 확보해 아테네를 지키는 장군이 된다.

하지만 현대 그리스에선 동성애는 엄격한 금기의 대상이다. 그리스 언론은 지난달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마고우인 헤파이스티온의 것으로 추정되는 추모공간을 발굴했다는 뉴스를 연일 토해냈다. 지난해 그리스 북부 암피폴리스에서 발굴된 기원전 4세기경의 이 공간은 처음엔 알렉산드로스의 무덤이 아니냐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헤파이스티온의 첫머리 글자가 발견되면서 알렉산드로스가 가장 아꼈던 친구이자 장수였던 헤파이스티온을 추모하기 제국 곳곳에 지었던 추모공간의 하나일 가능성이 제기된 것.

헤파이스티온은 기원전 324년 알렉산드로스와 함께 동방원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병사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시의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했다. 그로도 모자라 헤파이스티온을 돌본 의사를 처형한 뒤 헤파이스티온을 신격화하고 그 기념관을 제국 곳곳에 세울 것을 명했다. 그럼에도 슬픔과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몇 개월 뒤 친구를 따라 숨을 거뒀다.

영화 ‘알렉산더’에서 알렉산드로스(콜린 파렐)와 헤파이스티온(자레드 레토).
영화 ‘알렉산더’에서 알렉산드로스(콜린 파렐)와 헤파이스티온(자레드 레토).
헤파이스티온에 대한 이 지극한 애착 때문에 알렉산드로스가 그의 동성연인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돼왔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알렉산더’(2004)에서 알렉산드로스(콜린 파렐)와 헤파이스티온(자레드 레토) 간 동성애 장면 묘사가 등장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정작 그리스에선 헤파이스티온을 ‘알렉산드로스의 연인’으로 언급한 기사를 거의 볼 수 없다. 고대 그리스가 동성애의 천국이었을지 모르지만 현대 그리스는 동성애를 죄악시, 금기시하기 때문이다. 실제 2004년 영화 ‘알렉산더’가 개봉했을 때 그리스 변호사 25명이 스톤 감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경고장을 보낼 정도로 그리스에선 반발이 거셌다. 2013년 유럽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동성애를 허용해야한다는 의견이 스페인 독일 프랑스 영국에선 3분의 2가 넘었으나 그리스에선 40%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그리스가 동방정교회 국가이기 때문이다. 동방정교회는 로마가톨릭이나 개신교에 비해서 동성애에 더 적대적이다. 이 때문에 그리스에선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것을 ‘비그리스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올해 초 집권했을 때 무신론자답게 동성애 커플의 결혼과 자녀입양을 허용하겠다고 발언했다가 갑작스럽게 취소한 것도 이런 여론의 반발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알렉산드로스와 헤파이스티온은 진짜 동성애자였을까. 미국 외교격월간지 포린 어페어는 지난달 30일 조나단 짐머만 미국 뉴욕대 역사 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알렉산드로사나 헤파이스티온은 동성애자(gay)도 아니었지만 이성애자(straight)도 아니었다”면서 “그렇다고 이들을 양성애자(bisexual)로 규정하는 것 역시 현대적 성정체성을 덧씌운 편견”이라고 비판했다. 짐머만 교수는 “알렉산드로스와 헤파이스티온은 동년배였기에 그들 관계가 과연 성적이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의 꽃미남 내시였던 바고아스와 육체적 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은 크다”면서 “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부인을 셋이나 뒀고 헤파이스티온도 아내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게이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중 어느 하나로 선택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에 고대 그리스 남성들은 아내가 있더라도 젊은 남자에 대해 애정을 표하는 것을 당연시했다”며 “그런 그들에게 당시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게이’란 용어를 적용하는 것 자체가 역사왜곡”이라고 지적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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