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유영]냉장고에 부탁하지 않는 삶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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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오피니언팀 기자
김유영 오피니언팀 기자
부부에겐 냉장고가 3대 있었다. 대형냉장고와 김치냉장고가 있었지만 금세 차 버려 작은 것을 하나 더 샀다. 그러던 중 사업이 기우는 바람에 집을 줄여 이사하게 됐다. 어쩔 수 없이 작은 냉장고 하나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처분해야 했다.

작은 냉장고만 있는 삶은 불편했다. 매주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던 습관은 쉬 고쳐지지 않았다. 음식은 넘쳤지만 이를 넣어둘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졌다. 결국 ‘음식 씀씀이’를 줄여야 했다. 내친김에 재래시장에 가서 음식을 사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때그때 필요한 음식만. 장을 보는 품목도 달라졌다. 기존에 대형마트에서는 과자와 라면, 즉석식품 등 가공식품 위주로 샀었다. 하지만 재래시장에 자주 가다 보니 야채나 과일, 고기, 생선 등 신선식품을 더 많이 사게 됐다.

이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요리도 자주 해야 했다. 냉동 만두처럼 물에 끓이거나 전자레인지에 가열만 해도 한 끼가 완성되는 즉석·가공식품을 사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대신 요리가 거창하지 않았다. 채소를 나물로 무치고 밑반찬 몇 개를 내어 소박한 밥상을 차렸다.

부부는 이런 과정을 겪으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식단은 건강식으로 바뀌었고 체중도 다소 줄었다. 돈도 아끼게 됐다. 대형마트에 갈 때마다 10만 원은 족히 썼지만 재래시장에서는 2000∼3000원 단위로 찬거리를 사게 됐다. 냉장고에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냉동식품이나 곰팡이가 피어난 과일 잼을 넣어 두지 않는 것은 물론이었다. 부부는 “작은 냉장고 한 대만 있어도 충분한데 예전에는 있으나 마나 한 음식들을 왜 넣어두고 있었는지…”라고 말했다.

이들을 보고 ‘니어링 부부’가 떠올랐다. 철학자인 스콧 니어링과 환경운동가인 헬렌 니어링은 “세상에는 요리도 너무 많고, 요리책도 너무 많고, 요리사도 너무 많다”고 했다. 이들은 도정하거나 제분한 곡물이 아닌 살아 있는 통곡물로 식사를 준비했고, 직접 기른 채소와 과일을 먹었다. 일요일에는 사과만 소화할 수 있는 만큼 먹었다. 스콧은 92세까지, 헬렌은 100세까지 살았다.

물론 오늘을 사는 우리가 니어링 부부처럼 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최근 집밥 열풍으로 어떻게 먹는 게 행복한 것인지 등에 관심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이들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잡식동물의 딜레마’ 등을 쓴 마이클 폴란은 “우리는 음식의 홍수에 빠져 있지만 정작 ‘진짜 음식’은 드물다. 슈퍼마켓 선반에 ‘진짜 음식’이 사라지고 ‘그럴싸한 음식’을 가장한 가공식품이 빼곡히 들어찼다”고 꼬집는다. 그가 말하는 진짜 음식의 판단 기준은 증조할머니가 아는 음식, 즉 신선하고 살아 있으며 우리의 오감(五感)에 말을 거는 음식이다.

냉장고를 갖다 버린 부부는 “‘슈퍼마켓’보다 ‘마켓’(시장)을 가까이 하니 결과적으로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탐식의 시대’에 사는 우리가 냉장고를 다시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김유영 오피니언팀 기자 abc@donga.com
#냉장고#니어링 부부#진짜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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