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직서 사무관 올랐는데… 아들 공무원합격 소식 못듣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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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서 한국공무원 탄 버스 추락]‘늦깎이 사무관’ 안타까운 사연

부상자 이송… 급박한 지린대 병원 중국 지린 성 지안 시 버스 추락사고로 다친 승객이 2일 창춘 시 지린대 병원에 
옮겨져 이동식 침대에 실려 가고 있다. 이날 지린대 병원에는 버스 추락사고로 다친 한국인 승객 16명과 중국인 승객 1명이 
이송됐다. 중국 당국은 이날 사고로 11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창춘=신화통신 뉴시스
부상자 이송… 급박한 지린대 병원 중국 지린 성 지안 시 버스 추락사고로 다친 승객이 2일 창춘 시 지린대 병원에 옮겨져 이동식 침대에 실려 가고 있다. 이날 지린대 병원에는 버스 추락사고로 다친 한국인 승객 16명과 중국인 승객 1명이 이송됐다. 중국 당국은 이날 사고로 11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창춘=신화통신 뉴시스
“남편이 아직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요. 그토록 기다리던 소식을 듣지 못하고 떠나선 안 돼요….”

중국 버스 추락사고로 숨진 한금택 사무관(55·인천 서구)의 부인 A 씨(51)는 2일 쏟아지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이날 한 사무관의 둘째아들(25)이 지방소방공무원 채용시험에 최종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은 것이다. 공무원을 천직으로 여겼던 한 사무관은 아들의 합격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바랐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 저 소방공무원 됐어요”라는 아들의 말을 듣지 못한 채 생을 달리했다. A 씨는 “애 아빠가 얼마나 힘들고 억척스럽게 살아온 분인데…. 그깟 교통사고로 우리 얼굴도 보기 전에 눈을 감을 리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동료들에 따르면 한 사무관은 글씨를 아주 잘 썼다고 한다. 공직생활도 1985년 인천시 ‘필경사’ 일용직으로 시작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공공기관마다 펜으로 문서를 쓰거나 그래프를 그리는 전문 일용직이 있었다. 그는 1990년 일반행정직 9급 시험에 합격해 정식 공무원이 됐다. 2012년 사무관으로 ‘늦깎이’ 승진을 한 뒤 2년간 동장을 지냈다.

한 동료는 “아주 조용한 성격이지만 복잡한 업무를 소리 소문 없이 합리적으로 잘 처리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한 사무관은 고향인 전남 여수에서 고교를 나온 뒤 공무원 재직 중 주경야독 끝에 전문대를 졸업했다. 강범석 인천 서구청장은 “사무관 승진하고 동장과 복지담당 과장을 지내며 너무 고생했다. 잠시 숨을 돌리라는 취지에서 6개월간 장기교육을 받도록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사고 희생자인 고 김태홍 사무관(55·부산시)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무원이 됐다. 김 사무관의 형 김장근 씨(62)는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도 재직 중 과로로 뇌출혈을 일으켜 돌아가셨다. 아버지 제삿날(6월 29일) 이틀 뒤에 동생이 사고를 당한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부인 이모 씨(48)는 “바보처럼 착하게 살다가 이렇게 허무하게 가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제발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며 오열했다.

김 사무관은 2005년 ‘청백봉사상’을 비롯해 지금까지 7번이나 표창을 받았다. 절친한 동료인 김동렬 사무관(54)은 “20년 동안 친구로 지내오면서 10년을 같은 부서에 근무했다”며 “법이 없어도 살 만큼 온화하고 성실한 친구였다”고 말했다. 두 딸을 둔 김 사무관은 매달 한 번씩 동료들과 노인복지시설을 찾아 봉사활동을 했다. 퇴직 후 ‘봉사’를 제2의 천직으로 삼기 위해 지난해 독학으로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다.

고 한성운 사무관(54·경기 고양시)은 불우 청소년들의 ‘등불’이었다. 고양청소년쉼터 ‘둥지’에 따르면 한 사무관은 어릴 때 부모를 잃고 방황하던 장모 씨(22)를 위해 직접 일자리를 구해줬다. 또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청소년들의 검정고시 응시를 돕거나 취업교육을 주선했다. 둥지의 김영광 소장은 “한 사무관은 아동청소년 업무를 보면서 정말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며 “지난달 13일 (한 사무관) 큰딸의 결혼식에도 다녀왔는데 이런 일을 당하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 이만석 사무관(55·강원 춘천시)은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방송통신고를 졸업한 뒤 21세에 공무원이 됐다. 그는 남다른 소신의 공무원으로 유명했다. 동장 시절 시의회에 출석했을 때 의원들이 질의 없이 회의를 마치려 하자 “시민들을 위해 뛰어야 할 바쁜 사람들을 불러놓고 질의조차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하지만 직원들에게는 따뜻한 동료였다. 한 직원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 성실하고 꼼꼼해서 특히 회계분야에서 탁월했다. 연수 가기 전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잘 다녀오라’고 했는데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인천=박희제 min07@donga.com / 부산=강성명 / 김민 기자
#지방공무원 연수단 사고#버스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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