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환자 접촉 의료진 쉬쉬… 일반환자에 마스크도 안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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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비상/위기 불감증 병원]
확진환자 진료병원 - 서울시내 대학병원 안전실태 점검해보니

《 대전에 사는 심장병 환자 김태식 씨(69)는 3일로 예약된 서울의 한 대학병원 외래진료를 취소했다. 김 씨는 심장수술을 받을 병원을 찾다가 6개월 만에 어렵게 예약했지만 이 병원에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자가 있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메르스 공포가 퍼지면서 병원 방문을 기피하는 현상이 늘고 있고 ‘어느 병원 가면 안 된다’는 괴담도 퍼지고 있다. 현재 메르스의 진원지가 병원이기 때문이다. 3일 메르스로 새로 확진 받은 환자 5명은 모두 병원에서 2차, 3차로 감염된 사례. 또 지금까지 발생한 환자 30명 전원이 병원에서 감염됐다. 병원은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가 몰리는 특성상 감염의 위험이 높다. 하지만 메르스 발병 뒤에도 병원의 감염 위험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  
○ 병원들, 환자와 의료진 보호 나 몰라라

1일 확진 사망 환자가 발생한 경기도의 한 병원은 환자를 치료한 의료진을 제대로 격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병원 의료진의 가족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가족이 사망한 환자를 며칠간 치료한 의료진의 일원인데, 2일에도 병원에 출근해 일했다”며 “가족의 안전이 지켜지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 태산같다”고 했다. 이 가족은 “해당 사실을 보건 당국에 알렸지만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보건복지부는 3일 자료를 내 해당 의료기관은 코호트 격리 조치를 실시한 기관이며, 중환자실 근무자들도 격리 대상자로서 외부 접촉을 하지 않도록 조치가 취해졌다고 했다. 코호트 격리란 한 건물 내에서 일반 환자는 다른 공간으로 모두 이동시키고 의료진이 보호구를 갖춘 상태에서 메르스 환자만 진료하는 것을 뜻한다.

확진 환자가 다녀간 경기도의 다른 병원 한 간호사는 요즘 불안해서 잠을 못 이룬다. 이 간호사는 “병원에서 확진 환자와 접촉한 의료진이 누구인지 알려주지도 않는다. ‘병원 사정 등을 외부에 절대 알리지 말라’며 쉬쉬하는 데 급급하다”고 했다. 이 간호사는 의심 환자가 수술실을 거쳐 병실에 입원했는데, 해당 의료진은 일상 진료를 하고 있다고 했다.

○ 대형 병원도 안전조치 미흡

동아일보 취재팀은 3일 서울 시내 대학병원 6곳의 감염 안전 실태를 긴급 점검했다. 이에 따르면 6곳 중 내원 환자들이 마스크를 절반 이상 착용하거나, 감염 방지를 위해 환자들에게 마스크를 지급하는 병원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또 의료진과 직원들의 경우도 일부만 마스크를 착용했다.

정형외과 외래로 A병원을 찾은 이모 씨(64)는 “의사나 간호사로부터 메르스 전염 우려가 있으니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B병원의 사내 게시판에는 이날 한 직원이 “불안해 일 못하니 지침을 내려달라”는 글을 올렸다.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 의심 환자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지침이 없어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B병원은 부랴부랴 이날 오후에야 직원들에게 마스크를 지급했다. 그러나 그곳 미화원들은 화장실 휴지 등 병원 내 폐기물들을 마스크 없이 치우고 있었다.

C병원의 경우 메르스 전염의 직접적 경로가 될 수 있는 호흡기내과, 감염내과 외래진료실에 대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이 병원 3층에 있는 호흡기내과는 종양혈액내과 정신건강의학과 등과 붙어 있지만, 호흡기 진료 외에 다른 진료로 찾아온 환자에 대한 안내는 보이지 않았다.

○ 감염에 취약한 병원 구조

전문가들은 국내 메르스 환자가 병원에 집중된 것이 입원실의 다인실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전직 공공의료원 의사는 “국내 병원은 5인실이면 환자와 보호자 등 10여 명이 한 방에서 생활한다. 거기서 밥도 해먹고 빨래, 세면도 한다”고 말했다. 방지환 서울보라매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우리는 의료 감염에 취약한 형태(다인실 확대)로 점점 가고 있지만 이에 따른 감염 방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환자는 많고 진료시간이 짧은 것도 감염에 취약한 요인으로 꼽힌다. 한 내과 개원의는 “병원 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간당 최소 10명은 봐야 한다. 감기 환자가 오면 손을 계속 씻고 마스크도 써야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고 했다.

감염 위험이 가장 큰 중환자실은 인력을 확충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특히 중소병원의 경우 중환자실 간호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 확진 환자 느는데 격리병상은 부족

확진 환자가 늘어남에 따라 국가지정 입원치료 격리병상이 모자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전국에 국가가 지정한 입원치료 격리병상을 갖춘 곳은 17곳(민간 4곳, 국공립 13곳). 모든 바이러스 유출입이 차단된 음압격리병실은 105개, 그 외 일반병상 474개를 합쳐 총 579개 병상이 있다. 음압격리병실은 병실 내 기압을 외부보다 낮게 유지해 바이러스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시스템이 구비돼 있다.

실제 수백 병상을 운영 중이라 하더라도 메르스 환자는 음압시설을 갖춘 격리병동에서 관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 수가 넉넉하지 않다. 권준욱 메르스중앙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은 “전국적으로 음압시설 격리병동의 경우 메르스 환자 40명 정도만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병선 bluedot@donga.com·박성진·천호성 기자
#메르스#병원#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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