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의 글 쓰는 방식을 사랑합니다. 일종의 큐비즘(입체파)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샤넬의 2015·2016 크루즈 쇼가 열렸다.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는 쇼가 끝난 후, ‘한국의 글 쓰는 방식’을 언급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현장에서 쇼를 볼 때에는 눈에 띄지 않던 의상이 있었다.
‘마드모아젤, 가브리엘, 샤넬, 깜봉, 카멜리아, 한국, 서울….’
익숙한 한글로 된 흰색 단어들이 써 있는 검은색 옷이었다. 샤넬의 상징어와 한국과 서울이 합쳐진 단어의 조합. 어릴 때 유행하던 ‘매직아이’처럼 선명한 듯 선명하지 않게 블랙 재킷 위에 흰 글씨로 씌어 있었다. 금세기 최고의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이자 ‘패션계의 교황’으로 불리는 라거펠트는 한글을 보고 피카소를 필두로 한 입체파를 떠올렸던 것이다. 매직아이처럼, 양각처럼 입체적으로 보이는 글씨. 이것이 그의 눈에 비친 한글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남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세계무대에서 다소 소외됐던 우리는 늘 궁금했다. 한때 서양에서 한국 공연이 어쩌다 한 번 열리고, 외국인 관객이 ‘판타스틱하다’고 하면 그게 메인뉴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류(韓流)가 세계의 이목을 끌면서 우리의 문화적 자부심도 커졌다. 마침 이때 세계 최고로 불리는 디자이너가 해석한 우리 문화, 우리 패션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게 바로 샤넬의 2015·2016 서울 크루즈 쇼의 의미였다. 샤넬이 우리를 ‘택해줘서 고맙다’는 사대주의적 발상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샤넬을 통해 새롭게 우리를 알아갈 이들이 생각나 들뜨는 것이다.
패션 전문 일간지 WWD는 이번 서울 크루즈 쇼에 대해 “카를 라거펠트를 (한국의) 대사(ambassador)로 부르자”며 “많은 디자이너들이 중국과 일본의 문화유산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한국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라거펠트가 이를 바꾸기 위해 나섰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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