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밀월 과시하며 3각공조 압박… 한국 ‘종속변수’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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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訪美와 한국]정부 엉거주춤… 답 못찾는 외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과거사 반성 없이 미국 방문을 마무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거듭된 요청에도 그는 일제 만행에는 침묵한 채 미일 관계에 대한 찬사만 늘어놓으며 미국 의회 연설을 마쳤다.

외교부는 30일 대변인 성명에서 “아베 총리의 의회 연설은 화해와 협력의 전환점이 될 수 있었는데 그런 인식도, 진정한 사과도 없었다는 점은 매우 유감”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에 개의치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아베 총리의 연설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내용을 봐야 한다’고 밝혔던 한국 정부는 곤혹스러운 처지다. 한국 외교가 미일 합의의 들러리에 머물지 않고 주도해 나가는 창조적 발상을 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 미일 손잡고 “한미일 틀로 들어오라” 요구

아베 총리의 방미 기간에 미국이 마치 일본에 과거사에 대한 면죄부를 준 것처럼 비치면서 한국의 외교적 부담은 더 커졌다. 특히 미일이 최상의 관계를 과시하면서 한국을 미일의 종속변수처럼 한미일 협력을 내세운 것이 한국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일은 국방장관 회담을 갖고 한미일 3국 국방장관 회담을 추진키로 했다고 공개했다.

한미일 3각 협력은 지난해부터 반복된 봉합책의 하나다. 한일이 역사 갈등으로 접점을 찾지 못하자 미국이 접합제 역할을 떠맡은 것. 그 첫 결과물이 지난해 네덜란드 핵안보정상회의 때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의였다. 이후에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정체되자 미국이 나서 한미일 정보보호약정(MOU)을 체결하도록 했고 올해는 미국 제안으로 첫 한미일 외교차관회의도 열렸다.

우방인 한미일이 만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일본이 과거사에 성의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3각 공조만 강조하면 역사 문제의 엄중함이 희석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또 일본의 역사 책임을 촉구하면서 형성된 한중 연대가 느슨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한미일 공조가 반중(反中)으로 비칠 수도 있어 한중 간 긴장관계를 촉발할 수 있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현재 미국은 ‘아베라는 사람의 극우 성향은 싫지만 일본과 안보협력은 필요하다’는 분위기”라며 “한국은 일본이 할 수 없는 대북정책, 중국 전략에 주도적인 비전을 제시해 미국에 ‘한국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3각 협력 틀에 끌려다니지 말고 한국이 주도적으로 이끌 판을 짜라는 의미다.

○ 6월 한미 정상회담 성과도 고민

아베 총리의 방미가 파격적인 환대로 채워지면서 한국 정부의 고민도 깊어졌다. 다음 달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와 모든 면에서 비교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3년 5월 이미 미국을 다녀왔고 미국 의회 연설도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아베 총리처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링컨기념관 동행 △미국 대통령 전용차 동승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사저 식사처럼 각별한 친밀감을 과시하지는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며 미국 땅을 밟은 아베 총리와 달리 박 대통령의 6월 방미에 의미를 부여할 사안도 많지 않다. 정부 당국자는 “6월에는 6·25전쟁 발발 65주년 기념일이 있고 호국, 보훈의 의미가 강조되는 시기인 만큼 한미 동맹을 주요 테마로 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성과를 끌어낼 것인가도 과제다. 아베 총리는 방미에서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확정했고 ‘미일 비전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2013년 방미 때 ‘한미동맹 60주년’ 공동선언을 이미 채택했다. 한미 쟁점이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시기 재연기는 지난해 이미 성사됐고 4년을 끌어왔던 한미 원자력협력협정 개정도 지난주 타결됐다. 이렇다 할 이슈가 없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와 대비되는 방미를 굳이 강행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한미 정상이 자주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인 데다 미국의 초청을 받고도 이를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방미 시기와 관련해 미국이 올해 한중일 3국 정상을 모두 초청했는데 4월(일본), 9월(중국)을 빼고 나니 가능한 일정이 6월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조숭호 shcho@donga.com·정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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