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승건]‘대리 밑의 감독’ 원하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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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프로배구 여자부 도로공사는 10년 만에 2014∼2015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핵심 선수의 부상 공백으로 챔피언결정전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2년 연속 정규리그 4위에 그쳤던 팀이 1위를 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배구를 아는 사람들은 “경험이 많은 서남원 감독의 지도력이 빛을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서 감독은 최근 재계약에 실패하고 실업자가 됐다. 구단은 “새로운 변화와 체질 개선을 통해 좀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들은 그가 왜 잘렸는지 안다. 배구밖에 모르는 서 감독이 ‘정치’에 능숙하지 못했고, 고분고분하지 않아서였다.

얼마 전 본보의 주선으로 프로배구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과 프로농구 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만났다. 프로에서만 각각 8차례, 5차례씩 챔피언을 차지한, 더는 설명이 필요 없는 두 명장은 최근 프로구단들의 ‘트렌드’에 큰 우려를 나타냈다.

두 감독이 격정적으로 토해낸 말들을 요약하면 “주무르기 편한 감독을 쓰려는 구단이 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 감독은 “대리 밑에 감독”이라는 표현도 했다. 구단 프런트의 실무 직원보다 못한 존재라는 것이다. 물론 일부 구단의 경우지만 현장을 취재하고 있는 기자로서 100% 공감할 수 있는 얘기였다.

2014∼2015시즌을 마친 프로농구와 프로배구의 여러 구단이 다음 시즌을 앞두고 감독을 교체했다. 대세는 단연 ‘젊은 감독’이다. 한 프로배구 구단은 코치 경험이 없는 39세의 현역 선수를 사령탑으로 선임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보여줬다. 프로농구의 모 구단은 ‘올해의 감독상’을 가장 많이 받은 베테랑 감독을 내보내고 39세의 사령탑을 새로 뽑았다. 시즌이 한창인 프로축구도 젊은 지도자가 대세다. 올 시즌 K리그 클래식 12개 팀 사령탑 가운데 50대 이상은 3명뿐이다. 현역 최고령 선수인 전남의 김병지(45)보다 젊은 감독이 수두룩하다.

단언컨대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팀을 조화롭게 이끌고 좋은 성적을 올린다면 나이가 많고 적은 게 무슨 상관이랴. 신치용 감독은 40세에 삼성화재 감독을 맡았고, 유재학 감독은 웬만한 코치보다 어린 35세에 프로농구 사령탑이 됐다. 누구보다 젊었을 때 감독이라는 자리에 오른 두 사령탑이 걱정하는 것 역시 단지 나이의 많고 적음은 아니었다.

젊은 감독의 장점은 분명히 있다. 얼마 전까지 선수로 뛰어 후배들의 성향과 고충을 잘 알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형님 리더십’을 앞세워 팀을 잘 지휘하면 구단으로서는 만세를 부를 일이다. 문제는 젊은 감독을 내세운 구단들의 본심이다. 겉으로는 ‘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하면서도, 베테랑 감독은 돈(연봉) 많이 들고 상대하기 어려워 돈 덜 들고 말 잘 듣는 감독을 골랐다면 성적까지 기대하지는 말기 바란다. ‘대리 밑의 감독’을 믿고 따를 선수는 없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도로공사#서남원 감독#정치#트렌드#대리 밑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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