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신동혁의 증언 번복 어떻게 봐야 하나

주성하 기자 입력 2015-01-27 03:00수정 2015-01-2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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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
신동혁.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해 9월 면담한 뒤 “북한 인권탄압을 알리는 산 표본”이라고 했던 탈북 청년이다. 신 씨의 증언을 쓴 책 ‘14호 수용소 탈출’은 북한 인권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는 대표적 저서가 됐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통과에도 신 씨의 증언이 기여한 바가 크다.

하지만 며칠 전 신 씨가 자신의 저서에 부분적 오류가 있다고 고백하면서 그의 증언 전체가 신뢰를 잃었다. 신 씨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들은 크게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당장 북한은 탈북자 증언이 모두 거짓이라며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탈북자인 기자의 입장에선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신 씨가 ‘일부 오류’라는 표현을 쓰며 내용을 번복한 부분과 관련해, 기자의 판단엔 오류 차원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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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14호 수용소 출신이 아닌 18호 수용소 출신이라고 정정했다. 일각에선 18호 수용소면 어떻고 14호면 어떠냐고 하지만 둘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여러 18호 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1958년에 생겨난 북창 18호 수용소는 초기에 정치적 숙청을 당한 사람들과 국군포로 등을 수감했다. 대다수 정치범수용소가 그렇듯 수감자들은 여러 마을에 분산 거주하며 농장과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했다.

그러다 1975년 정치범 대다수가 다른 수용소로 옮겨가면서 18호 수용소는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사회안전부(현 인민보안부) 관할로 넘겨졌다. 이때부터는 주로 경제범과 출신 성분이 나쁜 ‘신해방지구’ 추방자들이 수감됐다(‘신해방지구’는 6·25전쟁 이후 북한 땅이 된 황해남도 남부 및 개성 지역을 말한다).

1980년대 초반부터 18호에선 사안이 경미한 사람들의 죄수 신분을 벗겨주었다. 이들을 ‘해제민’이라고 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해제민을 받기 꺼려 보통 그대로 수용소에 눌러앉았다. 이때부터 18호 수용소에는 ‘이주민’ ‘해제민’ ‘외부인’이라 불리는 3가지 신분의 주민들이 섞여 살았다. 이주민은 아직 죄수 신분인 사람들로 공민권과 이동의 자유 등이 박탈됐으며, 외부인은 탄광 등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18호 수감자 약 5만 명 중 80%에 해당하는 4만 명이 해제됐다고 한다. 나머지 1만 명은 봉창리라는 곳에 여전히 격리됐다. 2000년대 중반 마지막까지 해제가 안 된 봉창리 정치범 5000여 명이 개천 14호 수용소로 이전되고 18호 수용소는 완전히 사라졌다.

신 씨는 이런 곳에서 나서 자랐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이 언제 해제민이 됐는지는 밝히진 않는다. 그걸 밝히는 순간 김일성도 모르고 자랐다는 등의 그의 대다수 증언은 거짓말이 되게 된다. 신 씨가 나이도 숨겼다는 증언까지 있다.

물론 그가 마지막 격리지역이었던 봉창리 출신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그가 1999년과 2001년 두 차례나 탈북했다가 체포됐다는 것은 설명되지 않는다. 격리지역에선 탈북하다 체포되면 총살이다. 북한이 공개한 신 씨의 6세 때 사진이 본인이 맞는다면 그의 가족은 1980년대에 해제됐다고 볼 수 있다.

신 씨의 증언 중 특히 충격적이었던, 1996년 어머니와 형을 고발해 처형되게 했다는 대목도 사실과 다르다는 증언이 있다. 당시 처형장에 있었던 탈북자가 훗날 한국에 온 것이다. 그는 신 씨의 어머니와 형은 살인죄로 총살됐다고 기억한다.

이외에도 신 씨의 증언엔 의문점이 많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자란 곳이 북한에서 출신 성분이 가장 나쁜 사람들이 살았던 열악한 지역이란 사실이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이 바로 이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북한은 신 씨가 중학교까지 졸업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가 동창들과 찍은 사진을 한 장도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그곳은 졸업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할 정도로 천대받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의미다.

신 씨가 처음부터 진실을 이야기했다 해도 국제사회의 공분을 얻었을 것이다. 수용소가 존재했던 시절 북창 수감자들은 짐승보다 못한 가혹한 박해를 받았다. 신 씨의 책을 보면 그가 자라면서 들었을 과거 수용소 시절의 이야기가 자신의 체험담처럼 둔갑돼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10여 년 전에도 14호 정치범수용소 출신임을 주장하며 “그곳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쇳물을 부어 죽인다”고 했던 탈북 여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14호 출신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거짓 간증으로 큰돈을 벌어 지금은 미국에서 상점을 운영한다고 한다.

북한 인권과 관련해 자극적인 거짓 증언은 진짜 증언까지 의심을 받게 하는 범죄이다. 거짓으론 악을 이길 수 없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신동혁#증언 번복#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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