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원 광팬 여중생, 이젠 통역사로 ‘한솥밥’

  • 동아일보

여자농구 우리은행 유미예씨
2000년 경기 모습 보고 한눈에 반해… 2012년 전 코치 추천으로 업무 맡아… “일 힘들지만 농구사랑으로 극복”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의 통역 유미예 씨(왼쪽)는 팬으로 동경했던 전주원 코치와 한솥밥을 먹고 있다. 유 씨가 전주원 팬클럽으로 활동하던 시절 전 코치의 사인을 받았던 기념 티셔츠를 전 코치와 함께 들어 보이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의 통역 유미예 씨(왼쪽)는 팬으로 동경했던 전주원 코치와 한솥밥을 먹고 있다. 유 씨가 전주원 팬클럽으로 활동하던 시절 전 코치의 사인을 받았던 기념 티셔츠를 전 코치와 함께 들어 보이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소녀가 농구선수 전주원을 처음 본 건 중학생 시절이었다. 집에서 아버지와 TV를 보던 그는 옛 현대 선수들 가운데 유독 돋보였던 전주원의 이름을 아버지에게 물어봤다. 고교 진학을 앞둔 2000년 겨울 그는 직접 전주원의 경기를 보러 가기로 결심했다. 울산에 살던 소녀는 엄마 몰래 친구와 경남 양산의 한 체육관을 찾아갔다. 코트에서 본 전주원은 훨씬 멋있었다.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이 나오길 기다리던 소녀의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 그날 전주원이 걸어 나오던 모습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났다. 유미예 씨(29)의 ‘농구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친구들이 연예인에 빠져 살던 학창시절 그는 농구에 빠져 살았다. 2002년 전주원 팬클럽 ‘어시스트’에 가입했다. 전주원이 처음 은퇴했던 2004년 유 씨는 다니던 대학이 있는 대구에서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은퇴식을 봤다. 그때의 기차표는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전주원이 코트에 복귀한 뒤 국가대표로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했을 때 그는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었다. 유 씨는 경기장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응원했다.

14년이 지난 지금 유 씨의 직업은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의 영어 통역이다. 우리은행 코치 전주원과 한솥밥을 먹고 있다. 1년 반 동안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한 뒤 한국에 돌아와 취업준비를 하던 2012년 전 코치를 통해 통역 제의를 받았다. 통역을 맡으면서 그는 ‘제2의 농구인생’을 살게 됐다. 전 코치는 선수와 팬으로 오래 알고 지내면서 유 씨의 농구에 대한 열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유 씨는 “팬으로 동경했던 전 코치님과 같이 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웃었다.

농구를 좋아해서 시작했지만 지금의 일은 생각지 못한 난관의 연속이었다. 코칭스태프와 외국인 선수 간의 소통을 돕는 건 단순히 말을 전달하는 것 이상의 일이었다. 양쪽의 미묘한 분위기를 잘 전달하는 기술이 필요했고 어려운 농구 용어와 전략도 파악해야 했다. 유 씨는 전문적인 부분까지 선수들에게 물어가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3년 차가 된 이제야 조금 노하우가 생긴 것 같다. 농구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언어 실력만으로 통역을 하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유 씨처럼 농구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통역이 많다. 삼성의 이혜림 씨는 여자 프로농구 팀에서 유일한 선수 출신 통역 겸 매니저다. 국민은행 통역 김경란 씨는 신한은행 가드 김희란의 친언니다.

유 씨는 “통역은 언어 실력도 중요하지만 농구에 대한 이해와 관심, 까다로운 외국인 선수들에게 잘 맞춰줄 수 있는 성격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농구에 대한 애정이 크면 일도 더 즐겁게 할 수 있다”며 웃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전주원#통역사#여자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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