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소통門 닫아걸고 고소 춤 추는 청와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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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장 인사권 쥔 청와대가 내지른 고소 사건
검찰 수사결과 나와도 국민의 신뢰 받기 어려워
청와대는 만세 부르지 말고 언로와 소통 시스템 개선해야
“공직자 명예훼손 언론보도 형사처벌하는 나라는 후진국”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청와대 고소 사건 처리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바람에 서울중앙지검은 국정의 중심에 선 듯하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청와대 고소 사건을 힘들게 하나 해결하면 또 하나가 들어온다”고 하소연하듯 말했다. 청와대 고소 사건은 관할이 서울중앙지검이다. 어느 정권에서나 서울중앙지검장은 차기 검찰총장 승진 1순위에 들어가고 그 인사를 청와대에서 쥐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중앙지검장은 대통령비서관들이 고소한 사건을 수사하고 처분하면서 청와대의 의중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과 비서관들은 고소를 해놓고도 마음이 안 놓였던지 ‘문건 내용이 찌라시다’ ‘신문사가 확인도 안 해보고 기사화했다’ ‘청와대 문건 유출은 국기(國紀)문란’ 같은 온갖 주문을 쏟아냈다. 나중에는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이 주도한 모임에서 문건 작성과 유출을 했다는 내부 감찰 결과를 검찰에 보냈다. 고소인인 청와대가 검찰 수사의 모범답안을 미리 알려주는 꼴이다. 이래 놓고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 청와대는 만세를 부를지 몰라도 국민의 의구심은 커지고 야당은 특검을 요구할 것이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채널A에 출연해 “정윤회와 3인방의 비선실세 논란은 고소를 할 일이 아니라 김기춘 비서실장이 안에서 규명하고 정리할 문제였다”고 말했다. 사실 검찰 고소는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박 대통령은 찌라시라고 규정했지만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산하에서 쓰레기 정보를 담은 찌라시를 생산해 그것이 기업과 언론사에 돌아다녔는데 언론이 이를 그냥 지나치는 것은 직무유기다.

청와대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이라면서 사안에 따라 청와대의 태도가 오락가락한다. 청와대는 박지만 서향희 부부의 동향을 담은 청와대 문건 100여 쪽이 유출돼 흘러 다닐 때는 진상조사도 제대로 안 하고 유야무야했다. 이번 문건 유출은 언론이 보도하자마자 제꺼덕 고소를 하고 박 대통령이 두 차례나 강도 높은 발언을 했다.

문고리 권력은 청와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 민관(民官) 기관이나 단체의 대표를 만나려면 문고리 권력에 잘 보여야 한다. 박 대통령은 공식 회의나 행사를 빼놓고는 장관이나 수석을 따로 대면(對面)하는 일이 드물다 보니 문고리 권력 3인방과 비선 논란이 생긴 것이다. 소통 시스템을 뜯어고쳤어야지 검찰 칼잡이를 불러들일 일은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공식 기자회견을 5차례 가졌지만 쌍방향 회견은 단 한 차례에 불과했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들의 모임인 아침소리에서 대통령의 서면보고 최소화 및 대면보고 일상화, 대국민 기자회견 정례화를 건의했겠는가.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동선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진 것도 청와대 비서실장마저 대통령과 대면하거나 전화하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 사례다. 텔레비전이 생생하게 중계하는 국가적 재난 앞에서 박 대통령에게 서면보고서만 올라갔고 이 7시간 동안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들과는 대면 논의가 없어서 엉뚱한 유언비어가 생긴 것이다.

국민의 공복인 공직자는 늘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다. 주요 공직자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일부 사실과 다르더라도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다.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인 김재협 변호사는 “명예나 신용을 훼손하는 사실이 담긴 언론보도에 관해 형벌로 제재하는 나라는 후진국에 속한다”고 ‘언론보도와 형사책임’(2002년)이라는 논문에 썼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14일 “한국 정부는 명예훼손법으로 언론을 탄압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역대 정부 중에서 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 때 언론 상대 소송이 가장 많았다. 언론이 움찔해 보도를 자제하는 위축효과를 노린 소송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도 언론 고소에 관한 한 다음 순위를 차지할 것 같다. 노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법조인 출신인 김기춘 비서실장은 최근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보도와 관련해 동아일보도 고소했다. 청와대 내부 기강을 다스리고 문건 유출 및 대통령 측근과 비서들의 권력암투를 차단해야 할 사람은 김 실장이다. 청와대가 소통의 문을 닫아걸수록 언론은 ‘60%짜리 진실’ 보도를 통해서라도 국민의 궁금증을 충족시킬 도리밖에 없다. 남은 3년 임기 내내 소통 부재와 고소의 악순환이 이어질 것인가.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청와대#인사권#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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