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도연]융합교육 강조하면서 과학수업 줄이나

  • 동아일보

김도연 서울대 초빙교수 前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김도연 서울대 초빙교수 前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1871년 미국은 조선을 무력으로 개항시킬 목적으로 다섯 대의 군함을 보내 수교와 통상을 요구했으나 쇄국정책의 조선은 이를 거절하면서 전투가 벌어졌다. 그 결과 조선군은 사령관 어재연을 비롯해 350여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미군은 장교 1명과 사병 2명이 전사했다. 이것이 우리가 결사항전을 통해 서양 오랑캐의 군함을 쫓아낸 사건으로 기억하는 신미양요다. 당시 이 땅의 최고 교육기관인 서원에서는 변함없이 젊은이들에게 위정척사의 성리학을 가르치면서 선비를 양성하고 있었다.

같은 해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외국인을 초빙해 규슈의 구마모토에 소위 ‘양학교’를 세웠다. 교사는 34세의 미국인 제임스였는데,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남북전쟁에 참가했던 군인이었다. 그는 가족 모두의 여행 경비, 서양식 주택 그리고 당시로서는 엄청난 액수인 월 400달러의 급료를 제공받았다. 첫해에 500여 명의 지원생이 몰렸는데 이 중 46명에게만 입학이 허용되었다. 수학, 자연과학 그리고 지리학 등을 통역 없이 전부 영어로 가르쳤다.

한 나라의 운명은 젊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가에 의해 결정되기에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과정 설계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굳건히 유지되고 있는 고교에서의 문·이과 구분을 타파하기 위해 교육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융합교육은 매우 바람직하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두루 갖춘 창의적 인재 육성”이란 목표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런데 제안된 개정안의 요체는 국어, 영어, 수학의 필수시간을 각기 20% 이상 늘리고 역사 등의 사회과목 역시 50% 이상 늘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전체 필수교과목 시간에서 과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축소될 수밖에 없음이 자명하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는 미래를 준비하면서 이에 대한 교육을 약화시키는 교육과정은 무슨 까닭인가. 중국에서는 고등학생들에게 국영수는 각 10단위, 과학은 18단위를 가르친다. 미국은 대통령이 나서서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교육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해 한 해 3조7000억 원을 투자하고 있다.

과학은 합리적 사고방식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목이기에 훗날 과학기술 전문 분야에서 일하게 될 일부 학생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 모든 구성원이 절대적으로 갖추어야 할 일반적 지식이다.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한 융합교육을 추진하면서 과학의 비중을 오히려 낮추는 교육과정은 심각하게 우려할 일이다. 미래 지향적인 교육과정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김도연 서울대 초빙교수 前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융합교육#과학#필수교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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