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프란치스코 교황, 이 땅에 화해와 평화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4일 03시 00분


세계 가톨릭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오늘 이 땅을 찾아온다. 교황은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및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식을 포함한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을 만난다. 1984년과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에 이어 25년 만의 경사다. 교황은 아시아권에서 한국을 첫 방문지로 선택했다. 자생적으로 신앙의 꽃을 피운 한국 천주교에 대한 애정,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향한 염원이 담겨 있다. 신자와 비신자 모두 진심으로 교황 방한을 반기는 이유다.

교황은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낮은 곳으로 임하는 파격적인 행보로 주목받고 있다. 의전을 마다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해 손 내미는 따뜻한 공감의 리더십에 대중은 환호했다. 즉위식에서 비단 구두 대신 낡은 구두를 신고, 교황궁 대신 소박한 성직자 공동 숙소에 머물렀다. 자신의 생일에 노숙인을 초대하고, 소년원에서 무슬림을 포함한 ‘어린 죄인들’의 발을 닦아주고 발등에 입 맞췄다. 청빈 겸손 관용의 삶은 세계인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어려운 이웃에게는 인자하지만 불의와 악에 대해선 역대 어느 교황보다 단호하다. 바티칸 은행의 과감한 수술, 마피아 파문 선언 등 개혁적 리더십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교회 울타리를 넘어 세속 사회의 해묵은 과제를 바로잡는 것 역시 그의 관심사다. 틈 날 때마다 “정의가 바로 서고 그 정의가 가난한 자들에게 이르러야 한다” “그 누구도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느님의 이름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교황청은 환영 환송 행사를 간소하게 치르게 해달라고 우리 측에 요청했다. 오늘 주한 교황청대사관에서 갖는 첫 미사를 시작으로 18일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는 것으로 일정이 끝난다. 교황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고통과 근심을 위로받는 자리가 될 것이다.

분단의 질곡에 이어 갈등으로 분열된 이 땅에 교황이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교황이 주최하는 행사와 미사 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해 세월호 희생자 가족, 쌍용차 해고 노동자, 밀양과 강정마을 주민이 참석한다. 우리 사회의 균열과 갈등을 풀어나가는 데 교황의 영향력을 이용하려는 시도는 없어야 한다. “언제나 뜻이 잘 통하는 우리끼리만 이야기한다면, 이런 공동체는 더이상 생명의 공동체가 아니다.” 차이를 넘어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 숭고한 소명이라는 그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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