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위 순교자 모두가 중요… 원근법 없이 똑같이 그렸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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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교황 시복식 걸개그림 그린 김형주씨-순교자 초상화 제작 권영숙씨

《 걸개그림 중앙에는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서 있고, 다른 순교자들은 빨마가지(순교자의 승리를 의미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일부는 십자가를, 동정녀들은 백합을 들고 서 있다.
하늘색, 분홍색, 노란색, 흰색 등 파스텔 계열의 물감을 사용해 전체적으로 온화한 분위기다.
이 그림은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윤지충 바오로와 순교자 123위’에 대한 시복식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가로 3m, 세로 2m 크기에 124위 모두 한 그림에 담았다.
이 작품은 천주교주교회의 요청에 따라 시복식 전까지 공개되지 않는다.
30일 걸개 그림을 맡은 김형주 작가(67)와 124위 순교자 초상화 작업을 마친 권영숙 작가(76)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작업실에서 만났다. 》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의 걸개그림을 그린 김형주 작가(왼쪽)와 초상화 작업을 한 권영숙 작가. 이들 사이에 있는 그림은 김 작가가 그린 걸개그림과 유사한 색감을 지녔다. 걸개그림은 8월 16일 시복식 현장에서 공개한다는 방침에 따라 사진촬영을 할 수 없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의 걸개그림을 그린 김형주 작가(왼쪽)와 초상화 작업을 한 권영숙 작가. 이들 사이에 있는 그림은 김 작가가 그린 걸개그림과 유사한 색감을 지녔다. 걸개그림은 8월 16일 시복식 현장에서 공개한다는 방침에 따라 사진촬영을 할 수 없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김 작가는 “시복식 전까지는 그림이 나가서는 안 된다”며 사진 촬영을 막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그림은 보여 주겠다”며 작업에 얽힌 사연을 털어놓았다.

이 작품은 요한묵시록에 나온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 양 앞에 서 있다’는 구절을 토대로 그려졌다.

김 작가는 “걸개그림에는 순교자 124위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줄을 지어 하늘나라로 입장하고 있다”며 “그림 밑쪽에는 화동이 순교자들을 맞이하는 장면을 묘사했다”고 말했다.

124위 어느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 원근법을 무시하고 동일한 크기로 그려 넣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옆에 있던 권 작가는 “하느님의 빛(순교자)이다 보니, 124위 모두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고 얼굴이 환하다”고 평했다.

두 작가는 가톨릭미술가회 소속 회원 6명과 함께 124위 초상화 제작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순교자들 대부분은 초상화나 사진이 없어 작업이 쉽지 않았다. 초상화 작업은 크게 ‘인물 사진을 통한 골상 수집→124위 약전 연구→18, 19세기 조선인 골상 및 복식 반영→작가별 묵상을 통한 순교자들의 모습 스케치 및 색칠→주교 및 교회사 박사 감수→수정→완성’의 7단계를 거쳤다.

후손이 남아 있는 일부 순교자들은 사진을 구해 광대뼈와 턱뼈 모양을 잡으면서 집안 특유의 골상을 반영했다. 유화가 아닌 수채물감과 파스텔을 이용해 100년 이상 작품이 보존될 수 있도록 했다.

김 작가는 “8명의 작가들이 순교자들과 비슷한 인상의 사람을 찾기 위해 옛 조상들의 모습과 현대인들의 얼굴, 몽골 사람들의 사진을 수집하거나 직접 찍어 골격 등을 공부했다”고 말했다.

권 작가는 “작가들마다 습관적으로 자신의 스타일이 나올 것을 경계해 수십 번 수정 작업을 거쳤다”며 “복녀의 모습은 주로 수녀님들에게서 받게 되는 인상을 참고했다”고 귀띔했다.

2월부터 4월까지 8명의 작가들은 3개월 내내 매달렸다. 권 작가는 “가루인 파스텔로 작업하다 보니 하루에 7시간 이상 엎드려서 그림을 그렸다”며 “화가 인생 60년 동안 그림 그린 뒤 하늘에서 별이 보인 건 처음”이라며 “50∼70세 화가 8명 모두 작업을 마친 뒤 무릎 관절에 문제가 생겼다며 고통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엄살도 잠시, 두 작가는 “하느님이 주신 그림 그리는 재능을 하느님께 바쳤다는 점에서 참여한 작가들 모두 행복했다”고 입을 모았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김형주#권영숙#걸개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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