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는 무명씨였으나 세상을 떠난 뒤 가장 수필다운 수필을 쓴 사람으로 기억되는 이가 목성균 씨다. 그의 사후 6년 만에 발간된 수필전집 제목이 ‘누비처네’다. 요즘은 “처네가 뭐야?”라고 묻는 이가 많지만 우리 세대에겐 포대기보다 처네가 더 입에 붙는다.
수필 ‘누비처네’에서 목 씨는 40여 년 전 첫딸을 낳고 장만했던 처네의 추억을 꺼내놓는다. 한편은 초록색, 한편은 주황색 천을 맞대고 얇게 솜을 놓아서 누빈 처네는 이제 낡고 물이 바래서 누더기가 됐지만 처음 살 당시만 해도 시골에서는 귀한 물건이었다. 신혼 초기는 사업을 하겠다며 만삭의 아내를 고향에 남기고 홀로 서울로 갔다가 자갈논 한 두락쯤 해먹고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첫딸이 백일이 지나도록 얼굴도 보지 못한 그에게 추석 무렵 아버지의 하서(下書)가 당도한다. “제 식구가 난 제 새끼를 백일이 넘도록 보러 오지 않는 무심한 위인은 이 세상 천지에 너 말고는 없을 것”이라는 준엄한 꾸짖음과 함께 동봉한 소액환 한 장. 추신은 추석에 올 때 누빈 처네를 사오라는 당부였다.
추석을 쇠고 부부는 강원도 산골로 근친(시집간 딸이 친정에 가서 부모를 뵈는 일)을 간다. 아내는 애를 업고 남편은 술병과 고기 두어 근을 들고 산길을 걷는다.
‘달빛에 젖어 혼곤하게 잠든 가을 들녘을 가르는 냇물을 따라서 우리도 냇물처럼 이심전심으로 흐르듯 걸어가는데 돌연 아내 등에 업힌 어린 것이 펄쩍펄쩍 뛰면서 키득키득 소리를 내고 웃었다. … 달빛을 담뿍 받고 방긋방긋 웃는 제 새끼를 업은 여자와의 동행,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그때 처음 구체적으로 알았다.’
목 씨는 아버지가 탁월한 인생 연출자였고, 처네 포대기가 그 연출의 소도구였다고 회상한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포대기를 꺼린다. 아이를 업어 키우면 다리가 휜다는 게 첫째 이유지만 포대기로 둘러업은 모양새가 ‘스타일 구긴다’는 게 진짜 이유다. 그 대신 아이를 앞으로 안는 서양식 아기띠와 고급 유모차에 열광한다. 한동안 유모차 방향을 엄마와 마주보기로 하느냐 안 하느냐를 놓고 논쟁이 일기도 했다. 마주보기를 하면 엄마와 아기가 대화를 더 많이 할 수 있어 두뇌 발달과 정서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과 아이가 엄마와 같은 방향으로 정면을 보아야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주장이 맞선 것이다.
흥미롭게도 전문가들이 손을 들어준 것은 유모차가 아니라 포대기다. 문화인류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저서 ‘어제까지의 세계’에서 “전통 사회에서는 아기를 어깨 위에 얹거나 아기띠 같은 도구로 아기를 똑바로 세우고 정면을 바라보게 하는 식으로 업기 때문에 돌봄이가 걸을 때도 신체 접촉을 계속하고, 돌봄이와 똑같은 시야를 공유하며, 똑바른 자세로 옮겨지기 때문에 신경운동계의 발달이 빠르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 ‘할머니 육아법’으로 유명한 구보타 가요코 씨도 “안아주는 것보다 업어주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등에 업고 있으면 엄마가 앉거나 서거나 이동할 때 어깨 너머로 여러 가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안고 있으면 시야의 중심이 엄마가 된다. 가끔은 포대기를 두르지 않은 채 아이를 업어 균형 감각을 길러주는 것도 좋다.”(구보타 가요코 지음 ‘늘 웃는 엄마’)
맞벌이 자녀 대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를 키우는 ‘황혼 육아’가 늘어나면서 아기띠에 밀려 사라졌던 포대기가 다시 인기 상품이 됐다고 한다. 서양에서도 부모와 아기의 애착감이 커지고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된다며 ‘podaegi’를 찾는 이가 늘고 있단다. 공교롭게도 목성균의 수필집 ‘누비처네’가 올 초 방송에 소개되면서 출간 4년 만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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