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말기암 복거일에게 듣는 ‘죽음을 대하는 태도’

동아일보 입력 2014-03-31 03:00수정 2014-03-3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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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없지만 목숨 다할 때까지 쓸 것… 절망에 기대니 마음 편해”
어느날 앞집 아기 울음소리에 주르르 눈물이… 동시 떠올라 쓴 이후 가슴 통증 사라져
토요일이었던 29일 서울 은평구 수색 자택에서 만난 복거일 선생. 시인이며 소설가이자 사회비평가 자유주의논객으로 유명한 그는 1987년 장편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로 등단했다. 지난주 펴낸 장편소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를 필두로 지금까지 40여 권의 다양한 저작들을 펴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12년 전 그와의 만남


꼭 12년 전인 2002년 6월, 오늘처럼 복거일 선생(68)의 자택인 아파트 단지로 향하는 비탈길을 오른 적이 있다. 당시 1년 전 연세대에 합격한 딸의 통학을 위해 대전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 생활을 시작한 복 선생이 책을 냈고 문화부에서 일하고 있었던 기자는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자택을 찾았다. 선생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그는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은, 겉과 속이 일치하는 이 시대 보기 드문 지식인 중 한 사람이었다.

만남이 뜸해진 건 2년여 전부터였다. 안부나 청탁을 위해 전화를 하면 “소설 쓰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답이 왔다. 글에 대한 선생의 의지와 열정을 잘 아는 터라 잡다한 일상을 정리하고 큰 결심을 한 줄로 알았다. 그러다 며칠 전 신문 보도를 통해 그가 간암 말기라는 것과 치료를 하지 않으며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선생답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토요일이었던 29일 오전 9시 반, 미세먼지와 비 예보 소식에 하늘이 좀 흐린 날이었다. 얼굴은 어떻게 변했을까, 첫마디를 뭐라 해야 하나 복잡한 마음으로 초인종을 누르자 복 선생이 문을 열어 주었다. 반가운 인사가 오가고 자리에 앉았는데 집 전화와 그의 휴대전화가 동시에 울렸다. 전화를 받은 사모님이 “네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걸 보면 지인(知人)의 전화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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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마주 앉은 복 선생의 통화는 길게 이어졌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암 치료를 안 한다면 큰 오해입니다. 암이 발병하면 당연히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작가라서 치료에 들어가면 체력이 약해져 다시 글을 쓸 수 없을 상황이 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선택을 한 겁니다. 제발 잘못된 정보가 나가지 않도록 신경 써 주세요. 저 살날 얼마 안 남았어요.”

전화를 끊은 그가 “신문사 의료 담당 기자라는데 내 심정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 자꾸 엉뚱한 질문을 하네” 미안한 듯 말했다.

―그냥 끊으시면 되잖아요.

“어떻게 그래. 나 때문에 독자들이 오해를 하면 안 되지. 쓸데없는 희망을 주면 안 되는데 큰일이네.”

평소 사람을 대하는 그의 세심하고 따뜻한 배려가 느껴졌다.

―소식 듣고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나나 안식구는 이제 덤덤한데 어른들이 전화를 하시고는 울컥하셔서…. 친구들은 ‘야! 복거일이답다’ 이러던데(웃음). 다들 긴 얘기 안 해. (병 이야기) 구차하잖아.”

―(암 진단을 받고도 치료를 안 한다는 건) 보통 사람 결정은 아니지요.

“내 직업이 작가이다 보니 그래. 과거 선배들 암 치료 받다 결국 글 못 쓰고 눈감은 경우 많이 봤어. 암 치료 받으면 몸이 상할 수밖에 없어. 작가는 기력이 없어지면 더이상 글 못 써. 내가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치료와 일을) 병행할 수 있겠지. 직장 생활 하는 사람이라면 휴직계 내고 말이야. 하지만 장편소설 쓰는 일을 치료받으면서 한다고? 소설 쓰는 거 보통 일 아니야. 양자택일해야 해. 더구나 내 나이 지금 칠십을 바라보는데….”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들 하는데요.

“창조적 일을 하는 사람은 나이 칠십이 상한선이야.”

그의 표정과 목소리가 밝아 보여 기자의 마음도 차츰 편안해졌다.

―발병(發病)은 어떻게 아셨어요?

“한 3년 전부터 몸살감기가 끊어지질 않고 어깨가 움직이지 않아서 건강 진단을 받으러 갔지. 뇌는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폐와 간이 이상하다더군. 그러면서 암 세포가 이미 폐에서 간으로 전이된 것 같다고 사진을 보여주더라고. 폐에 반점이 보이고 간에 종양이 붙어 있더군. 정밀 진단이 필요하다길래 ‘다시 오겠다’ 하고 일어섰지. 나오면서 의사와 간호사에게 책을 선물로 주니 ‘암 선고 받고 이렇게 태연한 환자는 처음’이라고 의사가 더 당혹스러워하더군. 하하하.”

그는 그날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아내에게 “다신 병원 안 온다. 한번 입원하면 글쓰기 어렵다. 나보다 훨씬 훌륭한 작가들도 치료받다가 쇠약해져서 쓰고 싶은 글 다 못 쓰고 갔다”고 말했다고 한다.

―가족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안식구는 얼굴이 하얗게 되어 가지고 병원에서 나올 때부터 한마디도 안 했어.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니까. 저녁에 딸에게 말했더니 ‘포기하지 말자’고 울면서 애원하더군. 안식구도 ‘정밀진단이라도 받아 보자’ 하고. 하지만 설득을 했지. ‘아빠가 등단한 지 얼마 안 돼 ‘역사 속의 나그네’(1991년)라는 소설을 세 권 펴냈다. 곧 속편을 쓸 생각이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그게 스무 해 넘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간암 진단을 받았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바로 그거였다. 치료 시작하면 의사들한테 붙잡힌다. 그러면 나도 내 인생을 컨트롤 못 한다. 의사는 병과 전쟁하는 사람이다. 환자의 삶을 일일이 고려해 줄 수는 없는 거다’.”
종교에 기대지 못하는 불운한 사람

그는 “일주일 뒤 병원에서 다시 전화가 왔길래 ‘급한 일이 있어 못 간다’고 끊었지. 옆에서 듣고 있던 안식구에게 뭐라도 한마디 해야겠어서 ‘아귀찜 먹으러 가자’고 했지, 그걸로 치료 이야기는 끝났어” 했다.

―마치 남 얘기 하듯 하시네요.

“자기를 남처럼 대해야 소설이 써지는 거야. 내가 죽는구나 싶으니까 집중이 얼마나 잘되는지 몰라. 예전엔 한두 시간 정도 쓰면 됐다 했는데 요즘은 그게 아냐. 하루 종일 일하게 돼. 인생 마지막인데 게으를 수 있나. ‘역사 속의 나그네’ 세 권(4∼6권) 매듭짓고 세 권 더 썼어. 논픽션도 여섯∼일곱 권 분량이 되고. 나도 놀랄 정도야.”

―돌아가시면 다 끝인데 작품은 남겨서 뭐 하나요?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면 다 허무해지는 거야. 오래 살면 무슨 소용이 있나, 이런 거밖에 더 돼? 산다는 건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얘기 아닌가. 개별적인 모든 삶은 다 소중해. 하지만… 생물학적 진화의 맥락에서 보면 아무리 특출한 사람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40억 년 동안 이어진 지구 생태계 역사에서 겨우 몇십 년 사는 존재가 무슨 뜻을 얼마나 가질 수 있겠어. 사람이든 다른 종이든 개별적 개체는 별 뜻이 없어. 셰익스피어가 없었어도 뒤에 누군가가 비슷한 작품들을 썼을 거고 갈릴레오나 뉴턴이 없었어도 누군가가 그 업적을 대신 이뤘을 거야. 경제도 비슷해. 제너럴 모터스(미국 자동차회사)가 가고 제조공장 하나 없는 애플이 나오잖아. 중요한 건 시장(생태계)이지 개별 기업(개체)이 아니라고.”

그가 목이 마른지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하지만 삶이 생물학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허무하잖아.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삶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이 중요성을 극대화해 행동하도록 진화했어. ‘나는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야 이 혹독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니까 말이야. 개별적 개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물학적 사실과 ‘나라는 존재는 특별하다’는 이 실존의 부조화가 빚어낸 틈새, 이걸 메우는 게 바로 종교지. 나는 신(神)과도 통하는 특별한 존재이고 내세가 있고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허무해지지 않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존재의 의미를 알고 있는 지식인들은 지식이 늘어날수록 세상을 뚜렷하게 보게 되고 그럴수록 허무감이 커져. 그래서 나중에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도 많아. 그런데 나 같은 놈은 재수가 없어서 그것조차 안 돼(웃음). 그래서 결국 절망을 택했지. 절망이 가장 스테이블(stable·안정적)한 상태거든.”

―절망이 스테이블하다고요?

“과학이 내놓은 증거들이 너무 확실하니 종교에 기대지 못하는 나 같은 불운한 사람에게 절망은 가장 확실한 평정을 줄 수 있다고. 희망엔 불안이 따르는 법이니까 말이야. 나도 남은 날들이 점점 소중해지고 다가오는 죽음이 끔찍하긴 하지만 희망이 없어 기댈 곳도 없다 생각하니 오히려 맘이 편해.”

알 듯 모를 듯한 말이었지만 기자는 더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과학에 대한 믿음이 그렇게 투철하고 해박한 선생께서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결심하신 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운이 좋으면 간단하게 끝날 수도 있어. 기적적으로 말이야. 근데 암을 치료하면 몸을 안 상할 수가 없어. 단편 작가나 시인이라면 또 모를까, 나는 어쩌다 보니 소설을 택했어. 장편 한 번 쓰려면 전투 임하는 기분으로 나간다고. 한번 시작하면 얼마 걸릴지도 몰라. 짧으면 3개월? (소설가) 최인호 선생같이 재주 많은 사람도 결국 얼마 못 쓰다 가셨다고. 오죽 쓰고 싶었으면 골무를 끼고 썼겠나. 그 이야기 들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어. 그게 작가야. 나는 약아서(웃음), 아예 치료 안 받기로 한 거지.”

―어떤 분들은 아예 시골로 가서 식이요법 하면서 완치한 경우도 있다던데요.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그렇게 해서 낫는다는 자기 최면, 믿음도 있어야지. 난 경제학을 공부했는데 경제학은 항상 주어진 조건하에서 최적화를 하는 거야. 병은 주어진 조건이고 그럴 때 최적화가 뭐야?”

이 대목에서 기자가 “암에도 경제학을 들이대시니 정말 못 말리겠다” 하자 그는 “내가 재능이 하나 있는데 쉬운 일을 아주 어렵게 하는 데 도사”라고 말하며 다시 크게 웃었다.
암이라는 조건에서 최적화로 살기

―죽음에 이토록 태연하니 도사는 도사인 거 같으세요. 정말 두렵지 않으세요?

“한 달포 고생했지. 진단받고 온 날 나도 정신이 없잖아. 매일 잠들기 전에 릴랙싱(relaxing)하려고 탐정소설을 읽어. 그날도 읽고 누웠는데 갑자기 가슴이 콱 막히는 거야. 너무 답답해 결국 잠을 못 이루고 일어나 마루를 서성대면서 생각했지. 암 진단받은 사람들이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심리적 쇼크로 말이야.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골똘히 생각했지. 그러면서 몸이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이해하기로 했어. 육체가 충격을 받았는데 정신에도 부조화가 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어느 날인가 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는데 앞집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더라고. 갑자기 부모님 산소 생각도 나고 나도 몰래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거야. 그날 자리에 누워 동시(童詩) 비슷한 걸 하나 썼어. 이후 가슴 통증이 서서히 사라지더군. 마치 주술이라도 풀린 것처럼 말이야. 한동안 소설 쓴다고 시를 못 썼거든. 그런데 시가 나오는 거야. 왜 사랑에 빠진 사람이 연시(戀詩)를 잘 쓰잖아.”

―가족을 생각하면 너무 이기적인 결정 아닌가요?

“작가가 원래 그런 거야. 작가가 얼마나 이기적인데. 안 그럼 글 안 써져. 이것저것 하게 되면 그게 정치가지, 작가야? 서울 상대 내 동창들도 이런 내 맘 이해를 못 해. 작가가 뭐 얼마나 대단한 거냐, 돈은 얼마나 모아 놓았느냐 하는 놈들 많지. 평생 소설 한 권도 안 읽는 놈들이니(웃음)…그런 거 일일이 상대하면 지쳐요. 그냥 웃어 넘겨야지.”

그는 온전히 원고료와 강연 수입만으로 생계를 꾸려 왔다. 부자와 재벌, 자본주의를 옹호하지만 정작 월세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걱정 안 되세요? 나 없으면 아내랑 딸내미는 어떻게 사나.

“걱정되지. 내가 래디컬(radical)하잖아, 동물적인 용기가 있다고. 그래도 젊었을 땐 우주의 미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나라나 인류 걱정을 하면서 눈감을 줄 알았는데 마누라 자식 걱정하며 죽을 줄은 몰랐어. 하하하. 되게 초라하지 않아?”

―뭐가 초라해요, 당연한 거죠.

“나는 내가 좀 똑똑한 놈인 줄 알았잖아. 평생 폼 잡고 으스대고 살았으니까. 남들 다 깎아내리면서…. 문단(文壇)뿐 아니라 세상에 쓰레기 같은 놈들이 오죽 많아. 문단 분위기 잘 알잖아? 내가 등단한 게 80년대 말 아닌가. 다 좌파 일색이고. 문학이 역사를 접수했을 때였으니 ‘박정희 개새끼’라고 말하지 않으면 사람 취급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어. 나는 오히려 걔들을 시정잡배 놈들이라고 욕하고 다녔지. 처음에 난 걔네들이 대단한 줄 알았어. 근데 막상 이야기해 보면 하나도 몰라. 그냥 마르크스 달달 외운 거야. 그래서 내가 정통 주류 경제학의 이름으로 그들의 논리를 해체해 보겠다 생각한 거지. ‘마르크스 경제학은 경제사적으로 이미 한 세기 반 전에 폐기된 거’라며 조목조목 논리를 들이댔더니 어느 날부터는 슬금슬금 나를 피하더라고. 어쩌다 얼굴 부딪히면 ‘복 선생이 이 자리에 나오는 줄 알았으면 저는 안 나왔을 겁니다’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면서 나더러 자본주의 앞잡이 수구 꼴통이라고 욕만 해. 노무현 대통령 때였을 거야, 아마. 남북한 작가들이 모여서 6·15선언 실천 작가회의인가를 금강산에서 했는데 내가 먼저 시비를 걸었어. 북한에 무슨 작가가 있냐, 다 선동선전 요원들이지. 북한에 진정한 작가가 있다면 아오지 탄광이나 요덕(수용소)에 갔을 거다…. 때로 막막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이쪽 진영 논리를 거의 혼자 개척해 온 셈이라 보람도 있었지. 욕도 많이 먹으면 재산이 되더라고, 하하하.”

웃음 뒤 그의 표정이 약간 쓸쓸해 보였다. 다시 그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그 바람에 글을 못 썼어. ‘역사 속의 나그네’도 원래 60권 쓴다고 호언한 거야, 겁도 없이. 근데 딴짓 하느라고…우파 논객 어쩌고 사람들이 추어주니까 그게 좋아서. 2011년에는 연극(육군포로 조창호 중위의 삶을 다룬 ‘아! 나의 조국’) 뮤지컬(미 해병 1사단의 ‘장진호 전투’를 다룬 것) 한다고 힘들어 죽는 줄 알았지. 미군부대 공연은 되는데 한국군에는 아무리 얘길 해도 안 돼. 어찌나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베란다 앞에 쌓인 복거일 선생의 책들. 다독가로 유명한 그는 요즘 부지런히 책들을 정리 중이라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작은 병에 걸려도 자책감부터 드는데 어떠셨어요?

“암은 유전이야. 부친도 간암으로 돌아가셨어. 환경도 중요하지. 발암물질이 수천 가지 아냐. 우리가 다세포 동물이라서 세포 하나하나마다 지가 더 번식하려고 한다고. 경쟁하는 거지. 그걸 억제하는 기구가 뭐 하나 잘못되면 그놈이 증식을 한다고. 사회도 마찬가지야. ‘민중주의’라 부르는 게 있잖아. 그게 바로 암이야. 룰 안 지키고 내가 더 가져가겠다는 거야말로 암 덩어리 아니고 뭔가. 사람이 다세포 동물인 이상 암은 필연적이야. 젊을 땐 괜찮은데 나이가 들면 카피 에러(copy error)가 생겨 메커니즘이 고장날 수밖에 없다고.”

―식이요법이라도 하시나요?

“내가 고기를 별로 안 좋아했는데 체력이 달려 그러는지 고기가 당기는 것 말고는 다 그대로야.”

―자서전이라도 남겨야 하는 것 아니에요?

“에이, 무슨 자서전. 자서전은 순 거짓말이야. 더럽고 부끄럽고 잘못한 건 다 빼고 솔직하지 않지. 소설가가 소설 쓰면 되는 거지 뭐 자서전까지. 작가나 예술가는 나이 육십 넘어가면 창의성이 갑자기 떨어져. 자기 모방이 많아지고 옛날에 한 거 되풀이하고…. 백호 임제(白湖 林悌·조선 중기 천재 시인)가 돌아가실 때 뭐랬는지 알아? 5호 16국이니 뭐니 하면서 선비족 돌궐족 여진족 다 중원으로 가서 천자 칭호하고 황제가 됐다, 그런데 우리 조선은 한 번도 못 했다, 조선 땅에 태어난 게 부끄럽다. 그러니 (나 죽었다고) 곡(哭)을 하지 말라 했다고. 나도 그래. 이 문명의 변두리 나라에 태어나서 한 번도 중원인 미국에서 학설 하나 못 폈다고. 근데 한 가지는 건졌어. 문명권의 변두리 지식인 눈에 비친 세상, 그건 보편적인 것 아냐? 그걸 소재로 소설을 썼어. ‘높은 땅 낮은 이야기’(1988년) ‘보이지 않는 손’(2006년)이 바로 그거야. (한숨을 크게 쉬며) 이제 다 썼어. 허 선생 슬퍼할 거 없어. 안타까울 거 없어.”

어느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기자의 눈을 보더니 선생이 위로를 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도리어 위로를 받고 온 날이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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