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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3년째 판잣집 생활… 올림픽에 밀린 복구 언제 끝날지”

입력 2014-03-04 03:00업데이트 2014-03-0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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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3년]<下>피해복구 현장 이와테 현 가보니
희망과 절망 사이 3·11 동일본 대지진 당시 1700여 명의 주민이 쓰나미에 쓸려나간 리쿠젠타카타 시 전경(위 사진). 주변 산을 허물어 지대를 높이는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희망이 싹트고 있다. 가마이시 시 가설주택단지에서 생활하는 이 어린이 앞에는 어떤 미래가 놓여 있을까(가운데 사진 가운데). 7만 그루의 소나무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기적의 소나무’는 모형으로 복제돼 부흥의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아래 사진). 가마이시·리쿠젠타카타=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지난달 28일 일본 이와테(巖手) 현 가마이시(釜石) 시 외곽의 한 가설주택단지. 221가구 430명의 주민들은 여전히 짐 둘 공간도 거의 없는 29.8m²(2인 가족 기준)의 좁은 판잣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단지 입구 슈퍼마켓이 있던 공간은 텅텅 비어있었다. 가게 주인이 적자만 난다며 지난해 말 문을 닫고 철수했다.

일본 정부는 쓰나미(지진해일)로 집을 잃은 주민들이 2011년 8월 피난소에서 이곳으로 옮겨올 때 “2년만 참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하지만 재해공영주택(부흥주택) 건설은 더디기만 했다. 일본 특유의 ‘매뉴얼 행정’ 탓에 용지를 제때 확보할 수 없었다. 닷소 다쿠야(達增拓也) 이와테 현 지사는 “정부에 특례법으로 용지 취득을 쉽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지만 평소의 원칙(매뉴얼)대로만 한다”며 답답해했다. 잔해물 처리 등 피해지 복구도 이제야 마무리 작업 단계다. 가설주택단지 자치회장인 모리야 이사오(森谷勳) 씨는 “가설주택에서 벗어나려면 앞으로 3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 5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 기약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도쿄(東京) 주재 외신기자들과 함께 둘러본 동일본 대지진 복구 현장의 재해 주민 대부분은 여전히 절망에 휩싸여 있었지만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이들도 있었다.

○ 뇌리에 깊게 박힌 절망과 불신

3·11 동일본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주민들이 절망감을 호소하는 이유는 피해 복구가 더딘 데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소외감 때문이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유치도 이들에겐 희소식이 아니었다. 벌써부터 올림픽 때문에 자재와 일손이 부족해지면서 재해 복구공사에 차질이 생겼다.

정부 예산 지원이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감도 아주 컸다. 한 주민은 일본에서는 보기 드물게 대놓고 외신기자 앞에서 정부에 불만을 터뜨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경제정책은 아베노믹스가 아니라 아호노믹스(바보경제)다. 올림픽이 동북지방 부흥에 도움이 된다는데, 말로는 뭘 못하겠나. 원전 사고에 아무도 책임진 사람이 없다.”

오쓰치(大槌) 정(町) 초등학교가 있던 터에 세워진 부흥상가 분위기도 어두웠다. 쓰나미로 삶의 터전을 잃은 자영업자들을 위한 가설 점포 40곳이 들어서 있지만 손님을 찾기 어려웠다. 쓰나미로 남편을 잃었다는 과자점 사장 오사카 도마리(大坂十萬里) 씨는 “부흥 특수로 잠깐 경기가 좋았지만 작년 여름부터 매출이 5분의 1로 뚝 떨어졌다”고 전했다.

야마자키 시게루(山崎繁) 상가회장은 “부흥 특수도 음식점 술집 등 일부 업종에 국한된 얘기였다”며 “살아남은 30, 40대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다 보니 물건을 살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사람들

복구 현장은 절망의 수렁에만 빠져 있지 않았다. 힘든 환경에서도 희망을 찾는 주민이 점차 늘고 있다. 대지진의 상처는 이들의 힘으로 조금씩 아물어 가고 있다.

주민 1700여 명이 쓰나미에 쓸려나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 시. 옛 시가지였던 벌판 한 귀퉁이에 하얀 비닐하우스가 늘어서 있다. 비닐하우스 안은 버섯을 따는 이들의 손놀림으로 분주했다. 모든 것을 잃은 주민들에게 마련된 새 일감이었다.

원예 회사인 ‘버섯의 고향’ 사토 후미히로(佐藤博文·53) 사장은 대지진 이튿날 언덕 위에서 폐허가 된 마을을 내려다보며 “다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일자리가 있어야 사람이 모이고 마을이 부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바닷물에 침수된 토지에 벼는 심을 수 없었지만 버섯 원예는 가능했다. 정부 보조와 대출로 지난해 5월 폐허가 된 땅에 비닐하우스를 세웠다. 지금은 비닐하우스 27개 동에서 45명이 정식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사토 사장은 “내년까지 비닐하우스를 50개 동으로 늘려 100명을 고용하겠다”라고 밝혔다.

비닐하우스 아래로 펼쳐진 옛 시가지는 지대를 높이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해일로 뒤덮였던 앞바다의 방조제도 새로 건설 중이다. 아베 마사루(阿部勝) 리쿠젠타카타 시 도시계획 계장은 “시내 지대는 지진 전 평균 1m에서 9m로, 방조제는 5.5m에서 12.5m로 높이고 있다”며 “이 공사가 끝나면 시가지를 새로 만들어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사 현장 앞 해변에는 7만 그루의 소나무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기적의 소나무’가 서 있다. 지난해 고사한 이 소나무는 성금 1억5000만 엔(15억8500만 원)을 들여 모형으로 복제됐다. 이 나무는 부흥의 희망을 상징하고 있었다.

시골 학교였던 오쓰치고 학생들은 상당수가 가설주택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세계를 누비고 있다.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쏟아진 피해지 학생 초청 프로그램 덕분이다. 야마가타 모리헤이(山形守平) 교장은 “아이들의 가슴엔 여전히 상처가 남아있지만 서로 의지하며 내일을 향해 한걸음씩 내딛고 있다”고 말했다.

가마이시·리쿠젠타카타=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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