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회의실에서 해외 근무 여성 일꾼들이 화상채팅을 했다. 회의 참석차 잠시 한국을 찾은 김지영 몬테비데오 지사장 대행(왼쪽)과 오명선 베트남 하노이 지사장. 스크린 속 가운데 화면은 전준기 대리(싱가포르 근무), 오른쪽은 염수지 씨(코트디부아르 근무).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후배들이 얼굴까지 예쁘네.”
화상채팅으로 후배들이 연결되자 오명선 현대건설 베트남 하노이 지사장(41)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회의실에서 해외로 파견된 여성 건설인 4명이 화상채팅을 시작했다.
본사에서 열린 글로벌전략회의 참석차 잠시 한국에 들어온 오 지사장과 함께 김지영 몬테비데오(우루과이) 지사장 대행(38·과장)은 한국에서, 염수지 씨(26·코트디부아르 아지토 발전소 확장 공사 현장 근무)와 전준기 대리(29·싱가포르 트윈픽스 콘도 신축 현장 근무)는 각각 해외 현장에서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대형 건설사들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해외 건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해외 파견 직원의 규모가 매년 늘고 있는 가운데 해외로 나가는 여성 건설인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2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2004년 4101명에 그쳤던 국내 건설업계의 해외 파견 인력 규모는 2013년 2만7480여 명으로 늘었다. 이 중 여성의 수(정규직 기준)는 0.3% 안팎. 대부분 업체당 한 자릿수(현지 채용 제외)에 그치지만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특히 현대건설은 근무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일부 국가에 여직원을 파견하던 관행을 깨고 남성들도 꺼리는 오지나 영업직 수장으로 여성을 파견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현대건설의 전체 해외 파견 인력 1720명 중 여성 인력은 9명.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아지토 발전소 확장 공사 현장에 도착한 염 씨는 예상보다 열악한 현지 사정에 눈앞이 캄캄했다고 했다. “단수, 정전은 일상다반사예요. 하루 정도 씻지 않는 것쯤은 이제 익숙한 일이죠. 여기 온 뒤로 따뜻한 수돗물은 써 본 적이 없어요.”
코트디부아르가 내전 위험국이다 보니 국가 기간산업인 복합화력발전소를 짓는 공사 현장 주변은 경비가 삼엄하다. 무장한 경비원들이 24시간 경비를 서는 가운데 시내에 볼일이 있어 나갈 때도 무리를 지어 이동해야 한다. 젊은 아시아 여성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현지 근로자들의 뜨거운 시선도 감당해야 한다.
오 지사장에게 염 씨의 고생은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는 지난해 9월 베트남 하노이 지사장으로 발령받았다. 남편과 함께 10세, 9세 남매를 한국에 남겨 두고 혼자 하노이행 비행기를 탔다. 어린 남매도 엄마의 도전을 지지했다. 신규 수주 영업이 주 업무인 그는 술자리나 골프 대신 여성 특유의 ‘소프트 파워’로 영업력을 넓히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여성이 미팅 자리에 나가면 현지 파트너도 한국 드라마 얘기, 한국에 두고 온 가족 얘기를 먼저 물어보더라고요. 한국에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고 건설업계에도 여성들이 많이 진출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려준 덕인지 오히려 빨리 친해지는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남녀평등이 보편화된 남미시장에서도 건설사 현장 대표로 여성이 일하는 건 낯선 모습이다.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일하는 김 과장은 “구태의연한 영업 방식을 버리고 객관적인 지표를 바탕으로 상대를 공략하다 보니 오히려 신뢰감이 느껴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오지 근무를 자청하는 젊은 여성 인력도 늘고 있다. 전 대리는 “해외 파견은 국내 근무보다 몸이 고된데도 부러워하는 여성 동료와 후배들이 많다”며 “고생하는 만큼 배우는 것이 많은 만큼 더 많은 여성들이 도전해서 넓은 세상에서 경험을 쌓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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