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회 맞은 동아연극상, 연기상 최다 수상자 연극계 거목 신구-박정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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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나란히 무대 데뷔… 52년 한결같이 배우의 길 동행
“우리에게 연기는 운명”

《 신구(78)와 박정자(72). 존재만으로도 무대가 꽉 차는 이름이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최고 권위의 동아연극상에서 두 사람은 연기상을 모두 3번 받았다. 이혜영(52)과 함께 최다 수상 배우다. 1962년 같은 해에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두 사람은 “배우는 운명이었다”고 말한다. 27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리는 동아연극상 시상식 및 5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두 사람의 52년 연극 인생을 돌아봤다. 》

▼ “그때 쌓은 내공으로 버티지”
3회, 6회, 8회 수상 신구… “드라마 , 영화 참 많이 했지만 결국 머리에 남는 건 연극이더군”
신구 씨는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공연이 끝난 뒤 수염을 그냥 뒀더니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술 좋아하고 주책이지, 뭐”라며 웃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신구 씨는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공연이 끝난 뒤 수염을 그냥 뒀더니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술 좋아하고 주책이지, 뭐”라며 웃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세상을 다 안은 것 같았지. 세상이 나에게 배우라는 이름표를 달아준 기분이었고. 더 치열하게 연기를 하게 만들었어.”

신구 씨는 동아연극상이 자신의 연기인생에서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밀어주는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인간이 되련다’의 인민위원장과 ‘포기와 베스’의 크라운(이상 3회),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의 스탠리(6회), ‘사랑’의 해리(8회)로 연기상을 받았다.

“가족들이 배우 하는 걸 못마땅해했어요. 동아연극상을 연달아 받고 나니 그제야 인정해주더라고. 여기저기서 작품 하자고 해서 기회도 많이 생겼지. 상이 별로 없던 그 시절 진짜 큰 힘이 됐어.”

그는 동아연극상을 세 차례 수상하면서 10여 년간 작품을 하며 쌓은 내공이 지금까지 버티게 해 준 재산이 됐다고 말했다.

“지금도 연극을 안 하면 좀이 쑤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허허허. 드라마, 영화도 많이 했지만 결국 머리에 남는 건 연극이었어요. 연극을 하면 충전이 되는 기분이야.”

무대는 물론이고 영화와 드라마, 예능프로그램까지 종횡무진 활동하는 그지만 멜로 연기는 못했다. 그는 “이 얼굴에 누가 멜로를 시켜주나”며 웃었다. 젊었을 때는 자신감이 넘쳤다. 연기의 깊은 맛을 찾다 보니 매번 더 어려워진다고 토로했다.

“아버지 역을 수없이 했지만 아버지도 다 다른 아버지거든. 연기는 단 한순간도 쉬운 적이 없어요.”

현재 영화 두 편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 달에는 ‘꽃보다 할배 3’ 촬영을 위해 스페인으로 간다. 평소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한 시간가량 하는데 ‘꽃할배’ 촬영 때문에 운동시간을 30분 더 늘렸다.

“외국 나가서 힘들어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잖아. 나이 들었다고 그러면 안 되지.”

지난해 매진 행진을 벌였던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를 3월부터 다시 공연한다.

“건강이 받쳐 주는 것도, 여러 역할이 들어오는 것도 다 복이야. 진짜 감사한 일이지. 이제 정리해야 될 나이가 가까워오고 있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하려고 해.”

“배우가 된 건 나에게 큰 축복”
7회, 22회, 23회 수상 박정자“세 번의 수상 중 주연은 딱 한 번… 작은 역할 인정 받아 너무 기뻤어”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박정자 씨는 실제 만나보면 소녀 같다. 그는 전국을 누비며 낭독콘서트를 열어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연극을 알리고 싶어 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박정자 씨는 실제 만나보면 소녀 같다. 그는 전국을 누비며 낭독콘서트를 열어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연극을 알리고 싶어 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굉장히 작은 역할들을 했는데 상을 주셔서 정말 뜻밖이었어요. 무대를 빛나게 하는 건 조연, 단역인데 이걸 알아주는구나 싶었지.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어요.”

박정자 씨는 주연에 연연하지 않고 ‘미련하게’ 연습하고 참아왔던 많은 시간에 대해 보상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의 온달 모(7회), ‘달걀’의 둘째 부인과 ‘하늘만큼 먼 나라’의 고모(이상 22회), ‘위기의 여자’의 모니크(23회)로 연기상을 받았다. ‘위기의 여자’에서만 주연을 맡았고 나머지 두 작품에서는 단역에 가까운 역할이었다.

“영화감독을 꿈꾼 오빠 덕에 아홉 살부터 연극을 봤는데 그때부터 연극은 내 안에 꽉 차 있었어요. 배우가 된 건 축복이야. 연극배우만큼 정신적으로 호사를 누리는 직업은 없을 거야.”

연극을 시작한 후 그는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 만삭이거나 발목이 접질려 퉁퉁 부어올랐을 때도 예외는 없었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를 보러 오신 적이 있었어. 공연이 끝난 후 저기 앉은 분이 어머니라고 소개했더니 관객 분들이 더 뜨겁게 박수를 보내주시는 거야. 눈물이 날 정도로 황홀한 그런 교감은 무대가 아니면 절대 느낄 수 없죠.”

50년 넘게 연기한 그지만 아직도 무대에 오르기 전에 떨 정도로 무대는 그에게 성스러운 제단이다.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할 만큼 스스로에게 한없이 엄격하다. 연출가 한태숙 씨는 그런 그를 ‘제사장 같다’고 했다.

“연극은 막이 오른 그 시간, 그 공간에서만 존재하고 극이 끝나면 곧바로 산화하잖아. 그래서 더 소중해요.”

그는 2005년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 설립된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사장을 맡아 연극인의 의료비, 생계비 지원에 나서고 있다.

“후배들에게 비빌 언덕을 만들어 주고 싶었어. 수입이 얼마 안 되는데 매달 5000원씩 기부하는 배우들이 있어. 무엇보다 귀하디귀한 돈이에요.”

11월에는 지난해 돌풍을 일으켰던 ‘단테의 신곡’을 재공연한다. 내년에는 ‘19 그리고 80’을 다시 선보인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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