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통병장이 간첩선 보고하니 처음엔 반신반의”

동아일보 입력 2013-12-16 03:00수정 2013-12-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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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북한잠수정 격침 15주년… 최초 발견한 당시 병장 임승환씨의 회고
전남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북한 반잠수정 전시관에는 1998년 12월 17일 북한 간첩이 타고 온 반잠수정과 이들이 사용했던 총, 탄창 등 33개 장비가 전시돼 있다(왼쪽 사진). 사건 당시 북한의 반잠수정을 포착한 공로로 표창장을 받은 임승환 씨가 15일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표창장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어 있다. 여수시 제공
“꼴통 사병을 챙겨준 소대장님이 있었기에 은밀하게 침투하던 간첩선을 포착할 수 있었죠.”

임승환 씨(38)는 15년 전인 1998년 12월 17일 밤을 잊지 못한다. 당시 제대를 3개월 앞둔 말년 병장이던 그는 전남 여수 돌산읍 육군 31사단 95연대 1대대 임포 해안초소에서 입대한 지 4개월 된 김태완 이병(당시 21세)과 야간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오후 11시경 김 이병이 칠흑 같은 밤에도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열영상장비(TOD)를 보던 중 “7∼8km 거리에서 빠르게 해안 쪽으로 들어오는 괴선박이 있다”며 임 병장에게 보고했다. 임 병장은 “끝까지 상황을 지켜보자”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임 병장과 김 이병은 선박이 2km 정도로 접근했을 때 선체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것을 목격했다. 작전교본으로나 봤던 북한의 ‘반잠수정’ 레이더였다. 임 병장은 즉시 전화로 대대 상황실에 “간첩선이 발견됐다”고 보고했다. 상황실 근무자가 반신반의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임포 초소의 최고참인 전보성 병장(당시 23세), 부소대장인 신대호 하사(당시 24세), 소대장 이상훈 소위(당시 25세)가 “간첩선이 확실하다”며 추가 보고를 했고 곧 전군에 비상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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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병장 등 임포 해안초소 초병 30명은 각자 실탄을 지급받고 참호로 흩어졌다. 북한 잠수정은 결국 이튿날인 18일 오전 6시 50분 경남 거제도 해상에서 우리 초계함에 격침됐다.

잠수정에서는 북한 노동당의 지령을 받은 지하조직인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의 실체를 보여주는 문건이 발견됐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도 당시 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돼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잠수정은 2003년부터 여수시 돌산읍 전시관(301m²)에 전시돼 있다. 이곳은 10년간 관광객 20만 명이 찾는 안보교육장이 됐다.

잠수정 발견의 수훈을 세워 국방부 장관 표창을 받은 임 병장은 사실은 제대 말년의 문제 군인이었다. 초소 근무를 서던 중 후임병에게 경계임무를 시켜놓고 술을 마시다 대대장에게 발각돼 영창을 가는 등 ‘꼴통 병장’으로 통했다. 세번째 영창에 갈 상황에 놓였을 때 신임 소대장인 이 소위가 상부에 선처를 호소해 위기를 넘겼다. 임 병장은 남은 3개월 동안 군 생활을 착실하게 해 신임 소대장에게 은혜를 갚겠다는 각오로 경계근무를 자원한 거였다.

임 병장 등 당시 초병들은 현재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이 소위는 소령으로 진급해 9사단 참모를 맡고 있다. 신 하사는 지금도 부하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김 이병과는 연락이 되지 않지만 나머지 부대원은 2년에 한 번씩 정기 모임을 갖고 있다.

임 씨는 “술자리에서 우리의 북한 잠수정 격침기가 나오면 특전사나 해병대 출신들도 한발 물러선다”며 “다시 초병시절로 돌아가도 해안 경계 근무를 서며 간첩선을 잡고 싶다”고 말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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