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동정민]박정희 모습 말고 육영수도 보고 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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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정치부 기자
동정민 정치부 기자
“왜들 다 저보고 하라고 하세요. 아무 길도 보이지 않는데….”

2011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은 당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한 인사의 건의에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총선을 5개월 앞두고 침몰 위기에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구원등판을 요청하던 때였다.

아무리 선거의 여왕이라지만 정권 말기 총선 참패가 불 보듯 뻔해 보이는 상황에서 대선 가도에 흠이 되지 않을까 걱정할 수밖에 없던 고뇌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물론 참모들은 박 대통령이 당시 당을 위해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는 점만 홍보했다.

박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사생활을 언론에 노출하는 것을 꺼린다. 퇴근 뒤 관저에서 무엇을 하는지, 주말에 무엇을 하는지, 머리를 누가 하는지 등은 철저한 보안사항이다. 서민적인 사생활을 참모진이 홍보하려 해도 대통령은 절대 허락하지 않는단다. 박 대통령은 흐트러지거나 약한 모습을 국민에게 보이면 안 된다는 확고한 ‘대통령론’을 갖고 있다는 게 참모들의 분석이다.

그러다 보니 참모진이 대통령을 신격화하는 듯한 태도를 종종 보게 된다. 그들은 “대통령은 지지율에 신경 쓰지 않는다” “아무리 위기가 닥쳐도 표정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자주 말한다. 심지어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해석을 부탁하면 “감히 대통령의 워딩을 참모가 어떻게 해석하나. 있는 그대로 써 달라”고 오히려 당부할 정도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대통령을 ‘윗분’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 같다.

물론 박 대통령의 절제된, 강한 모습은 국민이 기대하는 리더십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거침없는 언행으로 논란이 됐던 이후론 보다 안정감을 주는 대통령에 대한 여망이 커졌던 게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이에 부응하는 면모를 보임으로써 여성 대통령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러나 ‘대통령은 대통령다워야 한다’는 그런 반듯함이 왠지 거리감을 주기도 한다. 친근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편한 지도자의 느낌이 아니다. 가끔은 박장대소하고, 등산도 하고, 피아노도 치고, 시장 외에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찾는 소탈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을까.

얼마 전 박 대통령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경기에서 시구를 했다. 후드 티에 운동화를 신고 웃으면서 공을 던지는 모습,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이지 않은 채 주심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모처럼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육영수 여사는 생전에 어려운 국민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사연을 경청하고 위로했다. 늘 따뜻하게 미소 짓는 육 여사의 모습은 남편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 이미지를 상쇄하는 데 일조했다. 남편이 없는 박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과 육 여사의 두 몫을 다 해내야 한다. 그에게서 육 여사의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검찰, 국정원, 군 이야기로 갑갑한 국민 가슴에 신선한 바람이 일 수 있게.

동정민 정치부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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