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1623명 살해후 악몽의 나날…난 영웅되려던 비디오게임 암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4일 20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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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이라크서 ‘드론 저격수’ 활동한 前미군병사의 고백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에서 드론(무인기)으로 수많은 테러 용의자를 사살한 전직 미국 공군 병사가 올해 초 자신의 경험을 언론에 폭로한 이후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고 미국의 인터넷 매체 'GQ'가 23일 보도했다.

주인공인 브랜던 브라이언트 씨(27)에 따르면 자신이 겪은 경험을 슈피겔지에 폭로하자 수천 건의 비난 메시지가 도착했으며 일부는 그를 반역죄로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함께 일했던 공군 지휘관은 "거짓말쟁이는 지옥에나 가라"는 저주를 퍼부었고 드론 사용 반대 단체들도 비난을 퍼부었다는 것.

브라이언트 씨는 2006년 미 공군에 입대한 뒤 2007~2011년 드론을 조종한 저격수로 테러범 등 1623명을 암살했다. 그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저격 현장에서 어린아이를 발견하고 보고했지만 지휘부는 '그냥 한 마리 개'라며 작전을 진행하도록 했다"며 드론에 의한 민간인 살해 의혹도 제기했다.

GQ는 '비디오 게임 암살자'라는 악명을 듣는 드론 저격수들도 실제 폭격기 저격수와 마찬가지의 심리적 충격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브라이언트 씨도 제대 후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나는 (테러범을 처단하는) 영웅이 되려고 했지만 그저 인생을 낭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뜻밖의 진단을 받은 뒤 다른 동료들도 작전 후 악몽에 시달리는 등 마찬가지의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11년 미 공군이 드론 조종사 6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42%가 강한 스트레스를, 20% 정도는 극도의 감정 소모와 소진(burnout) 상태를 호소했다. 일반 조종사들처럼 우울증과 분노, 알코올의존증과 자살 충동 등에 시달린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브라이언트 씨는 언론 폭로 전 술에 의존했고 실탄이 장전된 다연발 기관총을 구해 방에 들여놓기도 했다.

파키스탄 내 드론 공격은 양국 정부의 밀접한 공조 아래 진행된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미 중앙정보국(CIA)의 비밀 자료를 입수해 23일 보도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그동안 미국의 드론 공격을 공개적으로 비난해 왔다.

CIA 비밀자료에 따르면 파키스탄 정부는 드론 공격 목표를 정하는 작업을 담당했으며 미국은 정기적으로 관련 비밀을 파키스탄 정보국에 제공했다. 이번 보도는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가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드론 공격을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다음에 나온 것이다.

한편 WP에 따르면 드론은 2002년 이후부터 미국 안보 정책에서 주요한 도구로 떠올라 예멘과 소말리에서 70회의 공격을 감행했고, 파키스탄에서는 2004년 이후 358회나 출격했다. 그러나 이런 드론 공격은 오히려 미국의 적을 더 만든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 예멘 미국대사관에서 일한 국무부 관리 나빌 쿠리는 23일 카이로리뷰 기고문에서 "드론 공습으로 알카에다 요원 1명을 죽일 때마다 40~60명의 적을 새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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