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긴 여운 ‘우리 시대의 안톤 체호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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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 캐나다 소설가 앨리스 먼로 작품세계

올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캐나다 여성 소설가 앨리스 먼로(82)는 섬세한 관찰력과 빼어난 구성으로 짧은 이야기 속에 복잡하고 미묘한 삶의 한순간을 아름답게 그려내 ‘우리 시대의 체호프’라 불리는 북미 최고의 단편 작가다.

먼로는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시골마을 윙엄에서 여우사육업자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웨스턴온타리오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던 시절 첫 단편 ‘그림자의 세계’를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1951년 결혼을 하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이후 남편과 함께 캐나다 빅토리아에 정착한 뒤에는 ‘먼로의 책들’이라는 서점을 열었는데, 이 서점은 지금까지도 운영되고 있다.

1968년 출간된 첫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 캐나다 최고 권위의 문학상 중 하나인 총독문학상을 받으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소녀와 여성의 삶’ ‘내가 너에게 말하려 했던 것’ 등을 발표하며 영어권을 대표하는 단편소설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소녀와 여성의 삶’은 미국에서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뒀다.

1978년 ‘너는 네가 누구라고 생각해?’와 1986년 ‘사랑의 경과’가 총독문학상을 수상해 모두 세 번의 총독문학상을 받았다. 1998년 ‘착한 여인의 사랑’과 2004년 ‘떠남’으로 두 차례 길러상을 수상했다.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앨리스 먼로의 단편 ‘곰이 산을 넘어오다’를 원작으로 한 영화 ‘어웨이 프롬 허’. 동아일보DB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앨리스 먼로의 단편 ‘곰이 산을 넘어오다’를 원작으로 한 영화 ‘어웨이 프롬 허’. 동아일보DB
2001년 발표한 열 번째 단편집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가운데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아내와 그를 지켜보는 남편의 사랑을 다룬 표제작 ‘곰이 산을 넘어오다’는 2006년 영화 ‘어웨이 프롬 허’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ACTRA 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여러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는 등 호평을 받았다.

먼로의 작품은 모국인 캐나다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널리 읽히며 큰 사랑을 받아 왔다. 미국에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오헨리상, 펜맬러머드상을 받았다. 2009년에는 “작가들이 평생에 걸쳐 이룩하는 작품의 깊이와 지혜, 정확성을 작품마다 성취해 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맨부커국제상을 수상했다.

그는 작은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은 이야기를 쓰면서도 그 속에서 놀라움과 반전을 발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는 가장 순진한 소녀가 생의 추악함에 눈을 뜬다거나, 죽음을 대면한 사람들 속에서 삶에 대한 비전을 발견하는 식의 문법으로 ‘체호프적인 놀라움과 반전’을 구현해 온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학평론가 황종연 동국대 교수는 “먼로는 사회적 수요나 반응에 휘둘리지 않고 고집스럽게 단편소설만 고집해 온 작가”라며 “그의 많은 작품이 온타리오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데,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연과 반전을 찾아내는 뛰어난 직관력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먼로는 2012년 13번째 단편집 ‘디어 라이프’를 발표하며 “오랜 커리어의 절정” “작가로서의 능력이 최고조로 발휘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더이상 작품을 쓰지 않겠다고 발표해 ‘디어 라이프’는 먼로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먼로의 작품은 ‘행복한 그림자의 춤’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떠남’ 등이 번역 출판됐다. 단편 작가인 탓에 국내에 전문 연구자가 많지 않지만 탄탄한 서사와 절제된 감정으로 이야기 속 인물들을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꿰어내는 솜씨에 매료된 국내 팬들도 적지 않다.

저자는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을 내면서 “저는 ‘일어난 일’을 조금은 다른 형식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어떤 우회로를 거쳐, 낯선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말이죠. 저는 독자들이 ‘일어난 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일어나는 방식’에 놀라움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단편소설이 거둘 수 있는 최대한의 성과입니다”라고 썼다.

● 앨리스 먼로 연보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 윙엄 출생

1949년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 입학

1950년 첫 소설 ‘그림자의 세계(The Dimensions of a Shadow)’ 발표

1951년 제임스 먼로와 결혼

1963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빅토리아에 서점 ‘먼로의 책들(Munro's Books)’ 개점

1968년 첫 단편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으로 캐나다 총독문학상 수상

1976년 제럴드 프레믈린과 재혼

1978년 ‘너는 네가 누구라고 생각해? (Who Do You Think You Are?)’로 캐나다 총독문학상 수상

1986년 ‘사랑의 경과(The Progress of Love)’로 캐나다 총독문학상 수상

1998년 ‘착한 여인의 사랑(The Love of a Good Woman)’ 으로 길러상·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

2004년 ‘떠남(Runaway)’으로 길러상 수상

2006년 ‘열정(Passion)’으로 오헨리상 수상

2008년 ‘당신은 무엇을 알고 싶은가(What Do You Want to Know for)’로 오헨리상 수상

2009년 영국 맨부커국제상 수상

2012년 열세 번째 단편집 ‘디어 라이프’ 발표

우정렬·신성미 기자 passion@donga.com
#앨리스 먼로#노벨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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