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아파트는 부챗살 모양의 단지계획으로 동의 간격이 좁은 곳이 있고, 평면계획에서 복층을 도입해 동선이 길어지고 전용면적에 비해 주방이 작아 거주성 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다. 하지만 풍부한 녹지와 어우러져 도시와 자연의 축을 함께 고려한 단지계획은 도시 맥락과 소통하는 주택단지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다양한 공간 구성으로 변화하는 도시 일상을 유연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발주처 요구사항에 맞는 주거설계 기술을 보유한 일부 설계회사들이 공동주택 프로젝트에 주로 참여해 왔다. 이들은 발주처가 요구하는 분양성에 중점을 두어 설계한다. 사람들은 분양 받을지를 판단할 때 광고물이나 본보기집의 상업적 이미지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선분양 후시공으로 공급되는 한국 주택시장에서 입주 전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건축 요소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시간적 맥락은 고려되지 않는 것이다.
요즘 대두되는 층간 소음 문제를 보자. 주로 콘크리트로 지어지는 공동주택은 한 개의 동이 일체화된 구조다. 한 가구의 생활 진동이 다른 곳으로 전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위아래층 사이에는 시공비 절감을 위해 최소 두께의 슬래브가 있을 뿐이다.
대규모 단지의 긴 담장 때문에 가까운 거리를 돌아서 가야 하는 불편함도 생긴다. 도시는 다양한 기능의 세포들로 조직된 유기체와 같은데 모세혈관과 같은 골목길들이 거대세포에 의해 끊어지고 뭉개져 있는 격이다. 담장을 두른 주거단지에 사는 사람들이나 지척의 거리를 둘러 가야 하는 사람들이나 불필요한 긴장 속에 산다.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부분에서 시공비를 줄이고 대규모 단지 개발로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동안 우리는 비대해진 도시세포로 균형을 잃은 환경 탓에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모두 도시 일상의 크고 작은 공간적 맥락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 일들이다.
공동주택 건축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나 도시맥락에 대한 해석은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올림픽선수촌아파트는 국가적 이벤트의 기념비적 요소와 참가 선수들의 거주성이, 타워팰리스는 고급 주거문화의 새로운 상징성과 차별성이 중요했을 것이다. 둘 다 계획 당시에는 시대를 내다본 혁신적인 주거단지를 지향했다.
두 공동주택 단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도시환경의 리듬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지의 유무에 있다. 시대가 달라져도 공동주택의 특성상 일정한 밀도로 사람들이 함께 산다는 점은 달라질 수 없다. 사람들이 시대에 따라 다른 가치관을 가질지라도 그들의 일상은 공유된 도시맥락에서 펼쳐진다. 공동주택 건축에서 개별 단지의 거주 만족도를 넘어 도시 일상과 시공간적 맥락을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 한국의 현대건축 BEST & WORST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 100인. (가나다순)
가참희 강병국 강예린 강진구 강희성 고미석 곽희수 권문성 권영숙 김동일 김범준 김성우 김수미 김원식 김원영 김자영 김재관 김정동 김정임 김주원 김준성 김찬중 김태만 김태철 김혁준 김현섭 김형수 김호정 김회훈 김훈 남궁선 남호현 문훈 박길룡 박성진 박용성 박윤석 박인수 박제유 박창현 배병길 서현 손진 손택균 신성우 신창훈 신춘규 심영규 심재현 안우성 안창모 양수인 오신욱 오영욱 우대성 유이화 유주헌 윤승현 윤준환 윤창기 이광표 이기옥 이길임 이동훈 이민 이상림 이성관 이옥화 이우종 이은석 이정수 이정훈 이종환 이중원 이진오 이충기 임수영 임수현 임재용 임형남 장윤규 전봉희 전숙희 전진삼 정다영 정수진 정인하 정현아 정현화 조남호 조원용 조재모 조준배 최동규 최준석 한은주 함성호 황두진 황일인 황철호
한은주 SPACE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