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은행 전산망 마비]방송사 PC 먹통… 손으로 기사 써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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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방송사 혼란

20일 오후 2시부터 KBS, MBC, YTN 직원들이 쓰던 PC들이 갑자기 잇달아 다운됐다. 다시 켜도 검은 화면에는 “재부팅을 하라”는 영문 메시지만 떴고 윈도 등 운영체제는 아예 작동하지 않았다. KBS의 한 직원은 “공들여 작업한 데이터를 날릴까 봐 PC를 끌 수도, 켤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40분 뒤인 오후 2시 40분. 서울 중구 충정로 NH농협은행 본점. 김모 계장이 PC로 입금 처리를 하던 중 갑자기 화면이 멈췄다. 껐다 다시 켰지만 화면에는 알아볼 수 없는 흰색 글자만 가득했다. 은행 창구의 영업이 즉시 중단됐다.

이날 신한은행, NH농협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와 KBS, MBC, YTN 등 방송사의 전산망이 동시에 마비돼 큰 혼란이 빚어졌다. 금융권은 2011년 현대캐피탈과 농협은행에서 발생했던 대규모 전산장애를 떠올리며 위기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하는 등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방송사들도 ‘개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 일부 금융사 전산망 통째로 마비

금융계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14분부터 신한은행의 전자 금융거래가 전면 중단됐다. 지점 창구직원들이 고객의 계좌이체를 처리하려는 순간 PC는 먹통이 됐다. 신한은행 전국 지점들의 창구업무는 즉시 중단됐다. 인터넷·스마트뱅킹은 물론이고 현금자동입출금기(CD·ATM)까지 마비되면서 고객들은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신한은행 계좌와 연결된 체크카드와 일부 신용카드 고객들도 카드를 이용할 수 없었다. 주부 김모 씨(44)는 대형 할인마트 계산대에서 체크카드를 내밀었다가 낭패를 봤다. 통장 잔액이 넉넉한데도 승인이 거부된 것. 그는 ‘은행 전산망의 오류로 결제 승인이 안 된다’는 문자를 받았다. 현금을 넉넉하게 갖고 있지 않았던 김 씨는 결국 장 본 물건들을 모두 내려놓고 나와야 했다.

신한은행은 메인 서버에 문제가 발생해 전자 금융거래가 모두 마비됐다고 설명했다. 전산 마비는 발생 1시간 46분 만인 오후 4시 복구됐다. 은행 측은 지점의 영업시간을 오후 4시에서 6시로 연장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과거 일부 전산망에 에러가 발생한 적이 있지만 전산망이 통째로 마비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신한지주 계열사인 제주은행도 일부 지점의 창구 거래와 CD·ATM이 중단됐다. 또 NH농협은행, NH농협생명, NH농협손해보험도 일부 영업점에서 PC가 꺼지거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파일이 삭제돼 창구 업무가 마비됐다. NH농협은행 측은 사고 발생 직후 모든 영업점 단말기의 인터넷 연결을 끊었고 오후 4시 20분에 전산망을 정상화했다.

피해가 확산되자 전산 장애가 없는 은행들도 정보기술(IT) 부서 차원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하는 등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금융당국은 사고 원인 및 복구 현황 파악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금감원, 한국은행, 한국거래소와 ‘금융전산위기관리협의회’를 구성했다. 또 이날 발생한 전산 장애로 피해를 본 고객이 있다면 전액 보상해 주라고 금융회사에 지시했다.

○ 갑자기 블랙아웃… 방송사마다 대혼란

방송사들도 대혼란을 겪었다. 각 방송사는 전산망 마비 직후 뉴스특보를 내보내고 보안 전문가를 투입해 원인 파악을 하는 한편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방송 송출은 독립 전용망을 써 정규 방송이 중단되는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추가로 발생할지 모르는 피해를 막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었다.

KBS는 ‘전산망 마비’ 상황을 속보로 전한 후 뉴스특보를 편성해 피해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또 사내 방송으로 직원들에게 랜선을 빼고 PC 전원을 끄게 했다. 외부 네트워크와 사내 서버의 연결을 차단해 추가 피해에 대비한 것. KBS라디오 제작진은 컴퓨터에 저장된 음원을 이용할 수 없게 되자 오프라인용 CD 음악을 틀어 방송을 했다. TV 보도본부 기자들은 PC를 쓸 수 없어 손으로 직접 기사를 써서 속보를 보도하기도 했다.

MBC도 곧바로 라디오와 방송으로 뉴스특보를 내보냈다. 보도국 관계자는 “기사를 손으로 쓰기도 하고 e메일로 보내서 뉴스를 만들고 있다. 빨리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YTN 역시 이날 오후 2시 10∼20분에 회사 내부 전산망을 쓰는 PC 500여 대와 방송용 편집기기가 다운됐다.

방송사들은 “복구 이후가 더 두렵다”고 입을 모았다. KBS 관계자는 “지금까지 서버에 저장했던 각종 취재자료나 큐시트, 제작자료, 원고 등에 이상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피해 방송사의 일부 PC들은 하드디스크가 손상되거나 데이터가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유영·김윤종·한우신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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