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생활을 거치며 또래 친구들보다 한 뼘 더 성장한 덕분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따뜻한 집’이 없는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집이 없어 고생하는 서민을 도와주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달 초 LH에 입사한 경북 상주시 낙양1길 상주공고 3학년 홍준섭 군(18·사진)의 야무진 합격 소감이다. 7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LH 본사에서 기자와 만난 홍 군은 “합격 소식을 듣고 그동안 떨어져 지냈던 아버지를 내 힘으로 모실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눈물부터 났다”고 말했다.
LH는 올해 국내 공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200명의 고졸 정규직원을 채용했다. 특히 이번 LH 고졸 공채에는 보육원 출신의 소년가장인 홍 군을 비롯해 신체장애가 있거나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학생 등 불우한 환경을 극복한 합격자가 많아 눈길을 끈다.
홍 군은 5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상주보육원에서 약 80명의 보육원생들과 지냈다. 양봉 등으로 근근이 생계를 꾸렸던 그의 아버지가 형편이 어려워지자 그를 보육원에 맡겼기 때문이다.
홍 군은 10대 청소년이라면 으레 가지고 있는 게임기 등의 물건들을 사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한 번도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거나 아버지를 원망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는 “보육원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저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지만 오히려 많은 형과 동생들 사이에서 또래 친구들이 배우기 어려운 예의범절,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을 몸에 익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이번 LH 합격 후 보육원 동생들이 ‘우리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못 갈 줄 알았는데 형을 보니 희망이 생긴다’고 할 때 가장 기뻤다”고 소개했다.
홍 군은 보육원에 들어와서 한글과 구구단부터 시작해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그는 “보육원 원장님이 끊임없이 학업의 중요성을 알려주었고 친구들에 비해 부족할 수 있는 여러 경험을 간접적으로 얻기 위해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중학교 때부터 성적이 쑥쑥 오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는 반에서 내내 1, 2등을 놓치지 않았고 이번 LH 공채에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보육원 시절 월 2만 원 안팎의 용돈을 받았다는 그는 “이제껏 10만 원이 제일 큰 돈인 줄 알았는데 2000만 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다고 하니 그 돈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앞으로 저보다 형편이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바로잡습니다]본보 12월 17일자 B2면
◇본보 12월 17일자 B2면 ‘보육원 생활이 날 더 성장시켰어요…’ 기사의 주인공 이름은 홍준섭 군이 맞습니다. 홍 군 본인과 가족, 상주공고에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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