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안철수는 불쏘시개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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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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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논설위원
김순덕 논설위원
안철수 주가가 요동친다. 대선후보 사퇴 발표 후 첫 거래일이던 지난달 26일 하한가(3만5250원)로 곤두박질쳤던 안랩(옛 안철수연구소)의 주가는 정치권의 안철수 구애가 이어지면서 반등세로 돌아섰다. 30일 최종가 4만5900원. 대선 출마 기대감이 고조됐던 1월 최고가(15만9900원)와 비교가 안 되지만 업계 적정가인 2만 원대보다는 높다.

안랩주가와 몸값 올리려면 뛰어야

오늘 안철수가 선거캠프 해단식에서 어떤 말을 하느냐를 놓고 주가는 또 한 번 요동칠 공산이 크다. 개미투자자들 사이에선 ‘내년 봄 총리 되면 16만 원 급등’부터 ‘문재인 지원 발표 순간 철수주 하한가 쪽박’까지 널뛰기 예측이 분분하다.

민주통합당은 안철수가 얼마나 뛰어주느냐에 따라 판세가 달라진다며 “한 말씀만 하소서”라고 매달리는 분위기다. 그들은 아직도 밀당(밀고 당기기)의 고수이자 모호 화법의 대가인 안철수를 개미들만큼도 모르는 것 같다. 인터넷에선 “지지자들 입장에서 결정하겠다”는 식으로 일단 간만 볼 것이라는 추측이 넘쳐난다.

정치인 다 됐으면서도 기업가 마인드를 잃지 않은 안철수가 최소한 19일까지는 안랩과 자신의 주가를 동반 상승시킬 작정이라면, 문재인 대선후보를 적극 돕는다는 데 나는 500원 걸겠다. 그러나 만일 그가 맨 처음 우리에게 알려졌던 아름다운 안철수라면 그래선 안 된다고 본다. 민주당은 안철수가 대선 출마를 결심하게 만든 ‘4·11총선 패배 정당’ 거의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는 총선 때 야당을 편들지 못했던 이유가 “후보 공천이 계파 이해관계의 영향을 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 조건으로 구태정치의 혁신을 내걸었을 때도 이것만은 바꿔놔야 자신의 역할이 생긴다고 믿었을 터다.

안철수가 사퇴 선언문에서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루어지겠지만”이라고 못 박은 것은 민주당이 여전히 친노(親盧) 패권주의에 묶인 구태정당임을 역력히 드러낸다. 무엇보다 문재인 자체가 “노무현의 못다 한 꿈을 실현하겠다”는 친노 기획상품이다. 이해찬은 대표직에서 물러났다면서도 안철수가 사퇴하자 바로 문재인의 충청 유세장에 뛰어드는 기민함을 보여줬다.

뒤늦게 안철수 지지표가 아쉬워진 문재인은 10대 공약에 ‘새 정치’의 뜻을 최대한 반영했다며 안철수의 꿈을 안철수와 이루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혁신경제’ 같은 슬로건은 들어갔대도 TV토론에서 안철수가 우려했던 친노·친북 정책과 정체성은 거의 그대로다.

“취임 첫해 남북정상회담으로 시한을 정해놓고 무조건 하자고 하면 우리가 교섭 때 주도권을 잃고 몰리지 않겠는가”라는 안철수의 질문에 문재인은 “10·4선언에서 아주 좋은 합의를 많이 했다. 임기 말에 합의가 이뤄져 유명무실됐다는 아픔이 있다”며 무작정 퍼줄 것을 다짐했다. 이렇게 정체성이 딴판인 두 사람이 어떻게 단일화하겠다는 건지 의아했을 정도다.

그들과는 다른 정치, 당당히 하라

문재인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엔 ‘취임 첫해 남북정상회담 추진’ ‘10·4선언에서 합의한 공동사업 우선 추진’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안철수가 강조했던 새 정치의 요건 중 ‘중앙당 축소’는 민주당 공약인 ‘정당의 정책역량 획기적 강화’와 거리가 멀다. 당초 수용이 예상됐던 재벌개혁위원회 같은 안철수의 경제민주화도 없다. 이 최종 공약은 투표일까지 수정이 불가능하다.

안철수는 이런 식의 문재인과 민주당으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꿰뚫어보고 “국민 여러분의 열망을 꽃피우지 못하고 여기서 물러난다”고 밝혔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이 당선될 경우 총리 자리나 당권을 주겠다는 밀실협상을 믿고 안철수가 지원에 나선다면, 후보자 사후매수와 뭐가 다른지 의문이다.

‘공동정부’로 간다 해도 획기적으로 강화된 민주당 책임정치에 치여 안철수는 팽(烹)당하기 십상이다. 만에 하나, 2인자처럼 같이 뛰고도 문재인이 낙선한다면 안랩과 안철수 주가는 폭락할 게 뻔하다.

물론 그가 민주당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문재인이 당선돼도 한 자리 차지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기존 정치에 반대하는 새 정치인으로서 안철수의 몫은 엄연히 있다. 패배할 경우 안철수의 역할과 그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그의 부친은 최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에) 관심도 없었는데 괜히 박원순 시장 이후 지지율이 40∼50% 올라가니까 가만히 있는 아이를 국민들이 쭈쭈 그래가지고 그렇게 된 거 아니냐”라며 섭섭해했다. 그래도 ‘안철수 현상’은 공(功)이 과(過)보다 크다. 친노 세력의 불쏘시개로 사라지기엔 사람이 아깝고 국민이 불쌍하다.

안철수는 자신이 왜 정치를 하려고 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새 정치의 꿈이 잠시 좌절됐다고 해서 자신이 흔쾌히 손들어주지 못하는 후보를 국민에게 찍으라고 한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안철수#불쏘시개#민주통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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